강릉의 둘레길인 ‘바우길’ 구간 중에 ‘어명을 받은 소나무길’이라는 별난 이름을 가진 코스가 있다. 대관령 아래 성산면 보광리에서 명주군왕릉까지 12.5㎞ 산길이다. 이 길이 특별한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광화문 복원과 관계가 깊다. 지난 2007년 광화문 복원 때 기둥으로 쓸 소나무를 여기서 벌채했다. 길 중간에 있는 ‘어명정(御命亭)’은 그 사실을 알려주는 상징적 시설이다. 아름드리 금강소나무를 베어내면서 옛 예법에 따라 ‘어명을 받아 벌채한다’는 것을 알리는 고유제를 지내고, 베어낸 그루터기에 정자를 세워 벌채의 뜻을 기렸다.

한국인에게 소나무는 인생목(木)이면서 민족의 나무이다. 태어나면 소나무 가지로 금줄을 쳐 액운을 막고, 소나무 집에서 살다가 죽으면 소나무로 만든 관에 육신을 담아 솔숲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희로애락, 생로병사를 함께해온 소나무 이야기로 말하자면 강릉은 화수분 같은 곳이다. 해풍과 왜적의 침입을 막아 줬다는 바닷가 송정의 울창한 해송림에서부터 신라 화랑들이 심고 가꿨다는 한송정 송림, 오죽헌의 율곡송(松) 등등. 소나무 이야기는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도처에 즐비하다. 오대산 자락 첩첩산중, 부연동 마을에는 호랑이 전설을 간직한 ‘제왕솔’이 위용을 뽐내고, 100년 전에 뿌린 씨가 400㏊ 국내 대표 소나무 군락지를 이룬 대관령 솔숲은 산림청에서 아예 ‘문화재 복원용 목재 생산림’으로 지정해놓고 있을 정도다.

율곡은 동시대 강릉 향리의 어른이었던 임경당(臨鏡堂) 당주 김열(金說)이 집 주변에 선친이 심고 가꾼 솔숲이 후대에 모두 베어지지 않을까 걱정하자 “선대에 손수 심은 소나무에 잠깐만 눈길이 스쳐도 어버이 생각이 불현듯 솟구칠 텐데, 어찌 함부로 범하겠냐”며 저 유명한 호송설(護松說)을 남겼다.

그런 강릉 소나무가 지난 주말에 새롭게 개장한 서울 광화문 광장 산책로에 조경수로 심어졌다. 산책로 사이로 광화문과 북악이 한눈에 들어오는 절묘한 배치다. 광화문 기둥에 먼저 사용된 어명정 소나무와 짝을 이뤄 대한민국 심장에서 다시 천년을 살 강릉 소나무가 더없이 귀하고 자랑스럽다. 최동열 강릉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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