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나를 모시고

더 흐린 골짜기를 간 적 있다

나는 내가 아닌 듯

오래 전 두고온 호롱불 마냥

도처에 하얗게 흐드러진 산목련들

만물상 병풍은 여전히 깊은데

깊어지는 일은 흐려지는 일이라는 걸

묵묵히 안개를 삼키던 계곡들

오색령 넘나들다보면

그 봄 내가 흘리고 온 잎새의 눈물과

산목련에 홀리고 온 웃음에 대해

입산금지 표지판을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다

흘림골은 온통 홀린 것들의 비명 소리

그해 여름 수마에 홀린 돌들이 굴러내리고

흘림골이 귀를 닫은 이후

그의 안부가 사뭇 궁금하다

아직도 흐린 골짜기엔 넘치는 쓸쓸이

저 혼자 피고 지는 꽃잎을 세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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