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은 무자비하게…’ 화천군 사내면 삼일리 27사단 이기자부대 유격장에는 한때 ‘무자비 석’이라는 비석이 있을 만큼, 악명 높은 훈련으로 유명했다. 전방 예비사단의 특성상 훈련 강도가 높을 수밖에 없지만, 사단은 거친 지형으로 훈련이 힘들 수밖에 없었다. 동고동락하던 병사들의 전우애가 유달리 강했던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전역자 중에서도 이기자부대 출신들의 긍지와 연대감은 남다르다.

중부 전선을 책임지는 27사단은 전군에서 유일하게 행동 실천 형 명칭을 가진 부대다. 27사단에 대해 ‘한국전쟁 때 한 번도 못 이겨서’ 또는 ‘북한군에게 군기를 빼앗겨서’ 이름을 이기자라 지었다는 설이 있지만, 부대는 전후인 1953년에 창설이 돼 모두 낭설로 보면 된다. 부대는 내로라하는 연예인들이 군 복무를 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GOD의 멤버 김태우를 비롯해 배우 한석규·이동건·유준상·유승호, 빅뱅의 대성 등 유명인들은 입대 당시 팬들이 부대로 몰려와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으며, 전역 후에도 방송 등을 통해 부대에 대한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기자부대는 국방개혁 2.0 계획에 따라 올해 말 해체돼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베트남 전쟁 당시 사단 예하 79연대 1대대가 군사 원조단인 비둘기 부대 예하 제101 경비대대로 참전하는 등 전과를 거두었지만, 저출산에 따른 군 첨단화의 흐름을 피해 갈 수 없었다.

해체를 앞둔 이기자 부대 장병들은 이달 초 화천군 사내면에서 열린 화천토마토축제에 공동 주최자로 참여해 화천군민과 끈끈한 정을 나누었다. 군 장비를 직접 축제장에 배치해 관광객과 주민들에게 ‘인생샷’을 선물했고, 원활한 차량 흐름을 위해 무더위 속에서도 구슬땀을 흘렸다. 축제 선포식에서는 주민과 장병들이 포옹하는 감격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폐막 공연에는 이 부대를 전역한 가수 김태우가 출연해 음악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붉은색 바탕에 흰 글씨로 새겨진 사단 마크는 장병과 전역자, 지역 주민들에게 자랑스러운 상징이었다. 69년의 부대 역사는 강렬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이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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