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댐 건설 위한 케이블카 교각
김헌 학예연구사 최근 집중 규명
물자조달 따른 교통망 변화 분석

▲ 쏘가리 조형물이 설치돼 있는 일제 시대 삭도 교각 구조물.
▲ 쏘가리 조형물이 설치돼 있는 일제 시대 삭도 교각 구조물.

춘천 도심을 가로지르는 소양강 인근 쏘가리상 아래 덩그러니 놓여진 시멘트 구조물은 1940년대 전후 일제가 건설한 케이블카 교각 구조물의 일부다. 당시 대륙 침략을 위한 에너지원으로 화천댐을 건설할 당시 춘천역에서 화천까지 건설 자재를 운반하기 위해 만들었다. 하지만 이 구조물의 정확한 설치 배경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이 구조물은 춘천 근화동과 우두동 사이 일직선으로 8개가 놓여져 있다. 첫 번째로 위치한 쏘가리상 아래 구조물 2기는 지역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고, 강 중심부 구조물 2기는 조류 배설지로 방치되고 있다. 우두동 구조물 4기는 마장천 생태하천 복원사업에 따라 데크 지지대로 활용될 예정이다.

김헌 춘천학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최근 발표한 논문 ‘일제강점기 소양강 삭도의 설치 배경과 실체’를 통해 이들 구조물을 포함한 춘천지역의 일제강점기 유산을 집중 규명했다. 오는 15일 광복절을 앞두고 지역에 남아있는 침략적 산업유산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교통이 불편한 강원도에서 삭도는 일제에 필수 교통수단이었다. 일제는 홍천과 양양 사이 구룡령 삭도, 삼척 도계광업소 삭도를 통해 다양한 탄광·임산자원물을 수탈했다. 춘천도 예외는 아니었다.

 

▲ 춘천 봉의산 배수지 모습. 1923년 건설됐는데 100년째 사용하고 있다.
▲ 춘천 봉의산 배수지 모습. 1923년 건설됐는데 100년째 사용하고 있다.

김 학예연구사는 소양강 삭도의 설치 배경에 대해 세계 경제대공황과 맞물린 1930년대 조선공업화 정책의 일환이라고 분석했다. 일제의 전시산업 재편성에 따른 ‘일본고주파의 철강 생산’이라는 군사적 목적과 산업자본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1938년 한강수계 발전소 건립으로 이어졌다. 전시 물자 제작을 위한 막대한 전력 수요를 댐으로 충당하자는 계획이었다. 이로 인해 청평댐, 춘천댐, 화천댐 건설 등이 추진됐고 경춘철도 건설 인가도 이때 이뤄졌다. 경춘철도 건설로 인해 다양한 산업기반도 춘천으로 이동했다.

경춘철도의 화천 연장은 경제성이 떨어진다고 판단, 삭도를 건설하고 건설 자재를 운반하기로 했다. 소양 1교, 경춘철도, 삭도 지주기초가 모두 화천댐 건설과정에서 건설 자재 수송의 주요 루트로 활용됐다. 배후령 고개를 지나 화천으로 이어지는 도로도 이 시기에 확충됐다.

1923년 8월 4일 허가된 춘천수도부설에 대한 자료와 도면도 최근 처음 확인됐다. 해당 배수지(수돗물을 여러 곳에 안정적으로 나눠 보내기 위해 만든 저수지)는 현재 소양강 스카이워크 인근 펌프를 통해 봉의산까지 물을 끌어 올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봉의산에 있는 배수지는 100년 가까이 사용되고 있다. 당시 봉의산 수도관으로 혜택 보는 지역 인구는 일본인 1222명, 조선인 3279명이었다. 봉의산에서 내려보낸 물은 대부분 강원도청 인근에서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헌 학예연구사는 “일제강점기 북한강 수계 발전사업과 댐 건설 등에 따른 교통망 변화 등 춘천지역 일제의 산업 침탈 과정을 확인했다”며 “일제강점기 지역에서 벌어졌던 산업 침탈 과정과 식민지 산업 유산의 전모를 밝혀나갈 것”이라고 했다. 김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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