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5년 말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후 23년 만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첫 재판이 23일 열렸다. 이 전 대통령은 앞서 ‘국정농단’ 사건 1심에서 징역 24년을 선고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헌정 사상 형사 법정에 서는 역대 4번째 대통령이 됐다.
▲ 1995년 말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후 23년 만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첫 재판이 23일 열렸다. 이 전 대통령은 앞서 ‘국정농단’ 사건 1심에서 징역 24년을 선고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헌정 사상 형사 법정에 서는 역대 4번째 대통령이 됐다.

복수는 해를 입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그 해를 돌려주는 것을 이른다. 만약 피해자가 개인적으로 가해자에게 복수를 한다면, 공동체를 지탱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약속으로서의 법이 필요하다. 법은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응징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피해를 입힌 가해자가 법에 의해서도 처벌되지 않으면, 그 피해자나 가족들은 개별적인 복수에 나서기도 한다.

2002년 개봉된 박찬욱 감독의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은 스토리나 장면에 있어 매우 잔인한 영화다. 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제목처럼 엉킨 관계속에서 응징 역시 잔혹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선천적 청각장애를 가진 류(신하균 분)가 그의 유일한 가족인 누나의 병을 고치기 위해 나서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누나에게 맞는 신장을 찾아주는 조건으로 자신의 신장과 돈을 넘겨주지만, 사기를 당해 모두를 잃게 된다.

이에 중소기업 사장 동진(송강호 분)의 아이를 유괴해 돈을 마련하려고 했지만, 이를 알게 된 누나는 자살을 하고 유괴한 아이도 우연한 사고로 죽게 된다. 한편 아이의 아버지 동진은 유괴범 류에 대한 복수에 나서게 된다. 류 역시 누나를 죽음으로 내몬 장기밀매단 응징에 나서면서 연쇄적인 복수극이 펼쳐진다.

동진은 류를 납치하는데 성공해 강가에서 류를 잔혹하게 살해하지만, 동진 역시 갑자기 나타난 수상한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죽임을 당하는 순간 동진이 가슴에 꽂힌 칼에 있는 종이에는 ‘판결문’이라고 쓰여 있었다. 심판했다는 것이다. 수상한 그들은 류와 함께 유괴를 했던 류의 연인 영미(배두나)가 소속된 ‘무정부주의자 동맹’ 조직원이었다. 이들 역시 복수에 나섰던 것이다. 영화는 무정부주의자 동맹 조직원이 말없이 현장을 떠나고 죽음을 맞는 동진의 비명소리가 이어지면서 끝이 난다.

이 영화 속 인물들은 대체로 사회적 약자이자 소외된 사람들이다. 영화는 평범하지만 정상적이지 못한 인생군상들이 서로의 원한관계가 연결되면서 복수에 복수를 더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전개방식 또한 매우 자극적이다. 자기 딸을 죽인 류에 대한 복수에 나선 동진과 그 동진에 대한 복수, 영화는 살인과 함께 폭력의 악순환을 보여준다. 감독은 이들의 삶을 통해 물질만능 시대에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던 모양이다. 이 영화는 복수의 정당성과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취임 100일을 맞은 24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내 법무부로 출근하고 있다. 출근길 청사 입구에 지지자들이 보낸 취임 100일 축하 화환이 놓여 있다.
▲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취임 100일을 맞은 24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내 법무부로 출근하고 있다. 출근길 청사 입구에 지지자들이 보낸 취임 100일 축하 화환이 놓여 있다.

오늘 문득 복수 얘기를 꺼낸 것은 우리의 일상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라는 영역을 통해서도 복수가 등장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만큼 정치도 사즉생의 투쟁의 과정이자, 어쩌면 복수도 필요할 지 모른다. 돌아보면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교체되고 이전 정부에 대한 노골적 수사가 결국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불러온 것은 그리 먼 얘기가 아니다.

2017년 촛불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적폐로 규정하고 단죄했다. 당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적폐청산과 단죄를 주도한 이가 바로 지금의 대통령 아닌가. 그리고 5년이 흘렀다. 정권은 다시 교체됐고,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

윤석열 정부들어 문재인 정부 시절 각종 의혹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고 있다. 법무부 장관에 윤 대통령의 측근 검사로 꼽히는 한동훈 검사장이 임명됐다. 검찰총장도 없는 상태에서 검찰 인사를 단행한 검찰은 전 정권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에 나섰다. 서해안 공무원 피살사건과 동해안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에 대한 두 명의 전직 국정원장에 대한 수사가 대표적이다.

이 사건에 대한 수사는 대북정책 기조 변화와 함께 미묘한 이념 투쟁적 성격이 지녔다. 청와대 인사수석실의 산자부 산하 기관장 사퇴와 관련한 이른바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수사와 과기부, 통일부 그리고 그 산하기관에 대한 압수수색도 진행됐다. 월성 원전의 경제성 조작사건과 관련해서는 지난 6월 백운규 전 산자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까지 청구됐다. 구속영장은 법원에 의해 기각됐다. 이와함께 최근에는 월성1호기 폐쇄과정에 대한 수사를 위해 세종시에 있는 대통령기록관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쟁점인 이재명 사법리스크에 대한 수사도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대장동 사건을 물론이고 백현동 용도변경 사건과 성남FC 후원금, 변호사비 대납의혹 등이 그것이다. 특히 이재명 의원 부인 김혜경 씨는 경기도 법인카드 사적 유용 혐의로 경찰조사를 받았다. 이와 함께 감사원의 감사도 진행되고 있다. 그 중 주목을 끄는 것은 코로나19 백신 도입이 늦어진 원 밝히겠다면서 백신도입 관련 감사다.

이는 전 정권 지우기를 떠나 세계에서도 인정받은 K-방역에 대한 전면 부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 정부에 국한되어 수사가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지난 25일에는 경찰이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와 관련해 쥴리 의혹 및 동거설 등을 보도한 열린공감TV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있었다. 대선 전 열린공감TV는 김 여사가 과거 유흥주점에서 일하는 걸 봤다는 목격자를 인터뷰하고 김 여사와 동거설이 일었던 모 검사의 어머니를 취재하는 등 관련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 2018년 10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중앙지검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국회 법사위의 서울중앙지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선서하고 있다.
▲ 2018년 10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중앙지검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국회 법사위의 서울중앙지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선서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관련된 검찰 수사가 잇다르자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가 정치보복에 올인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반면 국민의힘은 내가 하면 적폐 청산이고, 남이 하면 정치보복이라는 이중잣대를 버리라고 쏘아붙었다. 어쨌든 이러한 논란이 좀체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정운영의 동력을 야당의 약점을 통해 확보하려는 의도라는 주장도 그래서 나온다. 물론 법치와 상식을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로서는 과거 잘못된 점을 바로잡겠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런데 지금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전(前) 전(前)정권’의 적폐를 청산하는 ‘전(傳)정권’의 수사를 담당했던 사람이 다시 그 ‘전(前)정권’의 적폐를 바로잡겠다며 수사에 나선 현 정부의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돌도 도는 게 세상사라지만, 세상 참 묘하게 돌아간다는 생각을 지우 수 없다. 그래서 다시 묻게 된다. 지금 정부가 하고 있는 전 정권에 대한 수사는 ‘정의실현을 위한 것’인가, ‘복수는 나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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