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 유일 입영부대인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용산리 102보충대가 지난 2016년 9월 마지막 입영식을 끝으로 해체됐다. 입영장정이 부모와 친지를 향해 경례를 하고 있다.
▲ 전국 유일 입영부대인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용산리 102보충대가 지난 2016년 9월 마지막 입영식을 끝으로 해체됐다. 입영장정이 부모와 친지를 향해 경례를 하고 있다.

어느 날 입영 통지를 받는다. 분명 병역 의무를 마치고 제대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시 입대하라니.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다. 또다시 훈련과 통제당하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니 암담했다. 그리고 지금 하는 일은 또 어떻게 하란 말인가. 숱한 걱정을 하다가 퍼뜩 잠에서 깬다. “휴유~ 꿈이었구나”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야말로 악몽에서 깨어난 느낌이다. 군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했던 ‘재입대의 꿈’ 얘기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지 않겠는가.

필자는 1983년 입대해 1985년 겨울에 제대했다. 지난 칼럼(‘강제징집 1503번 김순호와 2163번 무명씨’ 참조)을 본 사람을 알겠지만, 당시 시국사건으로 강제 징집돼 화천의 전방부대에서 군 생활을 했다. 회고하면, 11월 초순 적근산 정상에서 근무를 시작했는데, 무엇보다 제설작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오죽했으면 당시 구호가 ‘밤새 쓸자’였을까.

당시 전방 부대는 1년 단위로 돌아가며 철책 근무를 했다. 필자가 근무했던 지역은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와 마현리, 봉오리 등이었다. 지금도 이곳을 지나가게 되면 왠지 서늘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만큼 군 생활이 쉽지 않았던 까닭이다. 실제로 겨울에는 동상에 걸릴 위험을 안고 있었고, 간혹 피부병도 돌았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군 내의 위생관리가 좋지 않았던 시절 얘기다. 여기에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사람들을 지치게 했다. 위계질서가 뚜렷한 군대의 특성상 선임과 후임, 간부와 병사 간 갈등도 적지 않았다. 갈등 해결방식은 대화보다는 폭력적인 방법이 동원되기 일쑤였다.

▲ 2017년 7월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에서 열린 ‘22사단 고 고필주 학우 사망 관련 군대 내 가혹행위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진실규명 등을 촉구하고 있다.
▲ 2017년 7월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에서 열린 ‘22사단 고 고필주 학우 사망 관련 군대 내 가혹행위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진실규명 등을 촉구하고 있다.

사실 한창 피 끓는 청춘들에게 있어 강한 통제와 압박 속에서 군대생활을 해야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무엇보다 자유가 제한된다는 사실이 이들을 힘들게 했다. 물론 일부에서 ‘군대 체질’이라는 소리를 듣는 이도 있었지만, 이들조차도 전역 후 재입대의 꿈을 꾼다면 악몽을 꿨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필자가 군 생활을 할 때와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일상화되다시피 했던 군내 폭력은 대부분 사라졌다. 얼차려도 제한적으로 시행된다고 한다. 특히 선임병과 후임병 간에 가혹행위라도 발생하면 일벌백계한다고 한다. 물론 몇 년 전에도 군내 가혹행위나 집단 따돌림 등으로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지만, 군대 문화가 많이 개선된 것은 틀림없다.

군대 문화의 변화는 의무 복무 중인 청춘들에게 지급되는 월급에서도 드러난다. 필자의 기억에 의하면 1980년대 병장 월급은 5000원 정도였다. 이 돈이면 닭갈비에 소주 한잔할 수 있는 정도로 추정된다. 월급이라고 할 수도 없는 적은 금액이었다. 지금으로 환산하면 5만원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당시에도 군에서 월급 받아서 무엇을 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이런 수준의 월급이 세월과 함께 많이 오른 것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는 병장 월급 200만원 공약이 큰 반향을 불러오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내년부터 병장 월급을 130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오는 2025년에는 205만원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한다고 한다. 지난달 30일 발표한 2023년 국방예산안에 따르면 올해 67만6100원인 병장 월급을 내년에 32만3900월 인상해 100만원이 된다. 여기에 군 장병들의 자산 형성을 돕기 위한 장병내일준비적금의 정부 지원금을 월 최대 30만원 인상한다고 한다. 사실상 병장 월급은 130만원이 되는 것이다.

▲ 지난 2020년 8월 충남 태안 안흥시험장에서 국방과학연구소(ADD) 창설 50주년을 맞아 첨단무기 합동시연회에서 공개된 무인수색차량.
▲ 지난 2020년 8월 충남 태안 안흥시험장에서 국방과학연구소(ADD) 창설 50주년을 맞아 첨단무기 합동시연회에서 공개된 무인수색차량.

병역 의무를 수행하면서 월급으로 물질적 보상이 이루어지게 된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군 생활의 가장 큰 고통은 집단생활에 따른 엄격한 통제다. 훈련도 감당해야 한다. 군 생활 과정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인간으로서 받는 모멸감이 가장 큰 고통일 것이다. 또한 제대 이후에도 이 때문에 트라우마를 겪기도 한다.

그래서 군기를 잡는다는 명분으로 일제 군대로부터 내려오는 악습이 정당성을 부여받아서는 안 된다. 강압이나 폭력에 의해 군기가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군기는 국민의 신뢰를 받는 국가의 존재가 전제돼야 한다. 내가 지켜야 하는 가족과 사회, 국가가 지켜야 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굳건한 믿음이 필요하다. 여기에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군 문화가 결합해야 군기는 바로 선다. 물질적인 보상 역시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병장월급 130만원 소식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징병제에 대한 근본적인 고려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의무 복무로 일정한 피해를 감수하는 것에 따른 충분한 보상도 필요하지만, 직업군인 중심의 모병제로의 전환도 적극적으로 검토했으면 한다. 안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현대전에 걸맞은 선진적인 국방체계를 갖추는 것이 실질적이지 않겠는가. 병장 월급 130만원 시대를 반기면서 보다 능동적인 군대로 거듭나길 소망하는 이유다. 이제는 더 이상 ‘재입대의 꿈’이 악몽이 되지 않길.

강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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