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구꽃 
▲ 투구꽃 

‘미워하지 말라’지만 세상살이가 어디 그런가요.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참고 절제해도 고운 맘보다는 미운 맘이 더 빨리 자랍니다. 한가위 연휴에 쏟아진 뉴스 대부분이 불화, 갈등, 다툼, 외면, 분쟁 등이고 보면 ‘어려울 땐 그래도 가족’이라는 말조차 무색해집니다. 형제자매는 물론 이념과 가치를 공유한 정당 구성원들이 끊임없이 반목하는 이유는 뭘까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돈과 권력을 나누려 하기보다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 때문이겠지요. 이런 모습, 자연스럽다고요? 우리 사회가 원시적 먹이사슬에 갇힌 건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지난 역사를 살피다 보면 ‘사약(賜藥)’이라는 말을 종종 접하게 됩니다. 역모를 꾀하거나 중죄를 저지른 죄인을 죽이기 위해 만든 ‘독약’입니다. 그런데 전후 과정을 살펴보면 죄를 벌하는 것이 아니라 ‘미움’이 극에 달해 빚어진 참극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사약은 왕이 신하에게 내리는 것이라 하여 ‘줄 사(賜)’자를 씁니다. 핵심 재료는 독초인 부자(투구꽃 뿌리 덩이)와 천남성, 박새가 꼽힙니다. 특히 죄인을 뜨거운 방에 가두고 사약을 내린 사례로 보아 열을 내 오장육부를 파괴하는 ‘부자’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투구꽃(사진) 뿌리 덩이인 부자는 아코니틴이라는 물질이 독성을 발휘, 신경과 근육을 마비시키고 심장을 멎게 하는 무서운 독약입니다. 물론 초오(草烏)라 하여 심하게 추위를 타는 환자에게 치료제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부터 독화살 또는 독약을 만들 때 사용한 기록으로 보아 치료제라기보다 독약에 가깝습니다. ‘꽃’만 봐서는 투구꽃을 독초로 상상하기 어렵지요. 8~9월, 보랏빛으로 피는 꽃이 투구를 쓴 전투병을 닮아 멋진 자태를 뽐냅니다.

추석 연휴가 끝났습니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워 보입니다. ‘미움’의 보따리가 커진 탓이겠지요. 그렇더라도 너무 미워하지는 마시길. 미움이 클수록 마음의 독 또한 강해질 테니까요. 1m 남짓 자라는 투구꽃은 꼿꼿이 선 모습을 보기 어렵습니다. 다른 식물에 기대거나 비스듬히 누워있지요. 엄청난 독기를 품고 있음에도 스스로 지탱하지 못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뿌리가 썩으면 다음 해 새 뿌리에서 싹을 틔워 옆으로 이동하며 자라는 것도 신기하지요. 게걸음을 걷듯 움직이며 자라는 독초! 가까이하기엔 너무 섬뜩한 가을꽃입니다.

▲ 강병로 전략국장
▲ 강병로 전략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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