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에서 찾은 특별함
찰나의 순간 담아 예술이 되다

 이민영 작가가 필름카메라로 촬영한 ‘FALL(가을)’ 
 이민영 작가가 필름카메라로 촬영한 ‘FALL(가을)’ 
이민영 작가
이민영 작가

강원감영에서 사진 전시를 위해 설치작업 중이던 이민영 작가를 만났다. 그는 시각예술가, 사진가, 시각디자이너, 예술강사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누구도 제 나이로 봐주지 않을 만큼 동안인 이민영 작가도 어느새 마흔둘이 되었다. 마흔은 청년에서 장년으로 넘어가는, 풋풋함보다는 원숙함이 어울리는 나이여서일까? 오랜만에 만난 그는 편안해 보이면서 단단해진 느낌도 있었고 창작자로서 열정도 느껴졌다.

원주에서 나고 자란 원주 토박이인 그가 카메라와 인연을 맺은 지 20년이 되었고 사진가라고 불린지도 11년이 흘렀다. 그가 사진에 끌려 사진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때는 뒤늦은 사춘기를 겪던 고2 때였다. 잡지의 전성기였던 그 시절, 우연히 접한 잡지 사진에서 재미있는 포즈와 만화 같은 연출과 발상에 끌렸고 그때부터 사진과 디자인에 흥미가 생겼다. 우여곡절을 거쳐 주거환경디자인학과에 입학하지만 대학시절 그는 뜻대로 되지 않았던 상황에 좌절하고 방황하면서 길을 잃기도 했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남대문시장으로 달려가 가장 저렴한 야시카 35밀리 필름 카메라를 첫 카메라로 사기까지는 6년이 걸렸다. 그때가 24살이었다. 그는 부지런히 셔터를 눌렀다.

경기도 양동가는 길 어딘가(2020) 
경기도 양동가는 길 어딘가(2020) 

그는 곧 필름 카메라인 롤라이플렉스의 매력에 푹 빠졌다.

가장 싼 Rolleiflex MX를 구입하고 후에 Rolleiflex3.5e2를 장만해 롤라이플렉스 동호회에서 활동했다. 5년간 활동하면서 사진가, 사진기자, 패션 사진가 등 전문가면서 오랜 기간 사진을 해온 선배 사진가들에게 사진과 사진을 대하는 태도를 배웠다. 그는 주말이면 새벽 4시에 통일호를 타고 서울로 갔고 8∼10명이 2∼3시간 동안 걸으며 사진을 찍었다. 노포에서 점심을 먹고 충무로로 가서 찍은 필름을 맡기고 카페에서 현상을 기다리는 1시간 동안이 그에게는 좋은 공부 시간이었다. 그들이 가르친 것은 사진에 대하는 진지함, 태도, 존중하는 마음, 피사체에 대한 애정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새벽에 기차를 타고 와서 말없이 사진을 찍고 사진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며 경청하는 그의 열정을 좋아했다. 시간과 열정이 쌓이면서 그는 사진을 잘 찍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의 사진이 다른 사람과 시각이 다르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롤라이플렉스를 디지털카메라D750으로 찍은 사진.
롤라이플렉스를 디지털카메라D750으로 찍은 사진.

그는 2014년 원주문화재단 지원으로 신진작가로 데뷔전을 했고 지금까지 개인전 7회를 포함하여 전시를 20여 회 했다. 그에게 큰 의미가 된 신진작가 전시는 그의 시각이 바뀌는 시기였다. 처음 그는 주제가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행복을 박제한 것 같은, 일상을 수집하는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주로 나무, 잎사귀, 나뭇잎 위의 이슬, 빛, 별 등을 오브제로 삼았다.

“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 공부를 하면서 시간에 쫓기다 보니 일상이 단조로워졌어요. 그 안에서 어떻게든 다른 걸 보려 했는데 우연히 커피잔에 반영된 상을 보면서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었어요. 그때 제 작업은 반영의 반영이었지요. 그때가 힘든 시기여서 저는 카메라 뒤에 서 있는 것이 편했어요. 그래서 사진만 찍고 싶었는데 사진을 업으로 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지만 실제로 해보니 제가 찍는 사진과 좀 달랐어요. 잡지에 실릴 사진을 찍느라 한 달 내내 하루에 몇천 장의 사진을 찍어보니 어깨가 다 나가고 한쪽 눈이 상할 정도였어요. 저는 걸으면서 사유하고 정적인 시선을 담는 작업을 하는데 그런 작업은 제 몸에 맞지 않았어요.”

그는 커피잔에 비친 반영을 찍고, 사진을 사진 같지 않게 찍거나 오브제를 확대하거나 변주하고 관찰하면서 찍었다. 다시 흑백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정적이면서 움직임이 있는 사진을 주로 찍었다. 그는 그렇게 기존의 사진과는 다른 방식으로 주제를 잡게 되면서 자신만의 사진을 찾게 되었고 강원감영 전시도 반영 이미지를 480개 컵으로 점묘화처럼 연출하려 했다.

 원주감영 내 설치작품 전시 풍경.
 원주감영 내 설치작품 전시 풍경.

“제게 사진은 수행이고 묵상 같은 거예요. 그리고 제 정체성은 예술가고요. 작년부터 예술가로 살 수 있게 되었고 스스로 예술가로 인정하게 되었어요. 제가 원하는 대로 사진을 잘 찍을 수 있게 되면서 스스로 만족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젠 어떻게 찍어도 사진에는 제 색깔이 묻어나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깊이 있는 사진을 찍기로 했어요. 디자인이나 사진을 하면서 디자이너니까 사진은 이 정도 하면 돼! 디자인하면서도 사진가니까 디자인은 정도로 하면 돼! 그렇게 타협했는데 시각예술가로 정체성을 찾으니까 편해졌어요. 디자이너면서 사진가라는 정체성을 정립하면서 시각예술로 창작할 수 있게 되었고 여러 사정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시기에도 실크스크린도 배우면서 뭔가 표현하려고 한 걸 보면서 창작에 대한 제 열정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 경험과 과정을 공유하고 싶어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을 취득했어요.”

그는 좋아하는 사진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유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고 경험도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그의 카테고리에 교육을 추가했다. 10년 동안 해왔던 한지일은 접었지만 한지에 사진을 프린트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서울로 오가며 공부했다. 그는 그렇게 배우고 시도했던 작품들과 그의 40대 시각을 담은 사진을 선보이기 위해 원주문화원에서 12월 19∼24일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삶에, 사진에, 디자인에 충실하면서 그의 방식으로 진지하게 예술가로 살아갈 생각이라는 그의 12월 전시는 어떤 시선과 사유를 보여줄지 자못 기대가 크다. 시인·문화기획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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