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욕설은 미국 의회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아닌 것을 알면서도 그렇다고 해야 하는 한국의 ‘웃픈’ 현실

▲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48초간의 한미 정상환담을 했다.연합뉴스
▲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48초간의 한미 정상환담을 했다.연합뉴스

이번 주말은 온통 뉴욕 얘기만 회자될 것 같다. UN본부가 있는 뉴욕이 아니라 ‘뉴욕’에서 벌어졌던 ‘욕’사건 말이다. 지난 22일, 미국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은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 펀드 제7차 회의장에서 미국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 ‘48초’짜리 정상회담을 했다. 이때 회담을 마치고 회의장을 나오면서 한 윤 대통령의 발언이 모든 이슈의 블랙홀이 됐다. “국회에서 이xx들이 승인 안해주면 바이든이 x팔려서 어떡하나”라고 한 윤 대통령의 목소리가 언론에 그대로 노출되는 대형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윤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을 접한 국민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야당도 즉각 외교 참사라고 규정했다. 윤 대통령의 이번 해외순방은 당초 목적 중 하나인 영국 여왕 조문도 이뤄지지 못해 처음부터 엇박자가 났다. 특히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통과 등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한미 정상회담도 제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여기에 일본 기시다 총리와의 약식회담(일본은 간담이라고 주장)에 대해서는 굴종적인 방식의 회담이었다는 비판에 직면한 가운데 대통령의 욕설 혹은 막말 파문이 겹쳐 논란은 일파만파 됐다.

▲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지난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는 가운데, 윤 대통령 비속어 발언 피켓이 보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지난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는 가운데, 윤 대통령 비속어 발언 피켓이 보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외신, “윤 대통령 동맹국 미국에 대한 비하발언으로 곤경에 빠졌다”

윤 대통령의 욕설 파문에 여당인 국민의힘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일단 대통령으로서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는 점은 인정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대통령의 욕설 발언을 보도한 언론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사적인 자리에서 무심코 한 말을 언론이 키웠다”고 반박했다. 언론이 다른 정치적 입장에서 대통령을 공격함으로써 국익을 해치고 있다는 것이다. 정미경 전 최고위원은 “사실 이게 보도가 되면 윤 대통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이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권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님, 정신 차리십시오. 정말 X팔린 건 국민들입니다. 부끄러움은 정녕 국민들의 몫인가?”라고 지적했다.

외신들도 윤 대통령의 발언을 보도했다. AFP통신은 ‘미국에 대한 윤석열 한국 대통령의 욕설 섞인 비난이 마이크에 잡혀 입소문을 타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미 기록적인 낮은 지지율과 싸우고 있는 윤 대통령은 주요 동맹국인 미국에 대한 비하 발언이 마이크에 잡히면서 곤경에 처했다”면서 “대통령의 언행은 한 나라의 존엄성과 직결된다”는 한 네티즌의 댓글을 인용하기도 했다. 블룸버그와 가디언지, CBS 등은 ‘윤석열이 미 의회를 모욕했다’는 제목으로 한국어 비속어인 ‘이 xx’를 ‘idiots 혹은 ‘you punk’’라고 번역한 기사를 내보냈다.

▲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쉐라톤 뉴욕 타임스퀘어호텔 내 프레스센터에서 현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쉐라톤 뉴욕 타임스퀘어호텔 내 프레스센터에서 현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xx’는 미 의회 아닌 한국 야당에 한 말, 대미관계 의식한 ‘고육책’

그리고 23일, 윤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 논란에 대해 사실 파악이 먼저라고 했던 대통령실은 15시간 만에 김은혜 공보수석을 통해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당초 미 의회에 했다고 알려진 ‘이 xx’라는 말은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한국의 야당을 지칭한 것이며, ‘바이든’은 ‘날리면’이라고 해명하고 나섰다. 그러니까 윤 대통령은 글로벌 펀드 조성에 한국도 참여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야당이 거부해서 국회통과가 안 되면 자신이 창피해진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미 의회를 향한 욕설도, 바이든을 거론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의 이 같은 공식 해명을 듣고 솔직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듣는 사람마다 다르게 들릴 수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들었던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하여간 누구의 주장이 맞는 것인지는 관련 영상을 접한 국민이 판단할 문제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대통령실의 이같은 입장표명이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무리인 줄 알면서도 이 같은 입장을 표명할 수밖에 없는 저간의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대통령의 실언으로 자칫 국제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막아야 하는 까닭이다.

사실 윤 대통령의 ‘이xx’라는 욕설은 우리나라에서는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매우 심한 욕설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말은 욕설에도 마치 등급이 있는 것처럼 다양한 표현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를 번역했을 때는 대부분 직접적 욕설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문제다. 결국 이렇게 번역된다면, 그것은 미 의회를 향해 욕설한 것이 되고, 이는 매우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미국 의회와의 관계를 위해서도 이 발언을 공식화시키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은혜 수석이 궁색한 입장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도 외교관례나 국제관계를 감안한 일종의 고육책이 아닌가 싶다.

이제 윤 대통령은 귀국길에 오른다. 그의 부적절한 발언은 지나간 일이 됐다. 그렇지만 여당의 주장처럼 해프닝에 불과한 것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사안이 심각하다. 또한 이를 언론과 야당 탓으로 돌린다고 수습되는 것이 아니다. 이전 정부와 비교해 이 순간을 모면할 수도 없다. 이번 일로 인해 국민은 이미 깊은 상처를 받았다. 대통령이 국민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국익을 먼저 생각해 대통령실의 공식 입장을 인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닌 것을 알면서도 인정하는 ‘웃픈’ 처지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책임자를 문책하시라. 이러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시라. 그러면 국민은 국익을 위해 윤 대통령의 욕설이 미 의회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고 동조할 지도 모른다.

강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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