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시장’ 내 손 안(X) 좌판 위(○)에 있죠
한국전쟁 직후 중앙시장 터 잡아
미군 주둔·철수·전통시장 쇠퇴
60여년 한국사 관통 자리 지켜
국적 다양 ‘없는 게 없는’ 잡화점
미군 물건 받아 판매 장사 시작
‘외제 통로’ 수입자유화로 새국면
‘누가 와도 친절하게’ 목표 운영
“내 삶의 터전이자 가족의 전부
시민 곁에 오래오래 남았으면”

▲ 춘천 중앙시장 양키시장의 터줏대감 선호상회. 이 곳 주인 조숙현씨에게 선호상회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한 인생의 일부분이다. 조숙현씨가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춘천 중앙시장 양키시장의 터줏대감 선호상회. 이 곳 주인 조숙현씨에게 선호상회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한 인생의 일부분이다. 조숙현씨가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춘천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시장인 중앙시장 한 가운데는 이른바 ‘양키시장’이 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미군부대가 춘천에 터를 잡은 후 군인이나 그 가족들을 통해 받은 제품들을 하나 둘씩 팔면서 생겨난 곳이다. 그 중에서도 선호상회를 중심으로 한 6개 매장은 양키시장의 원조다. 나라가 두 동강이 난 전쟁부터 미군부대 주둔, 철수, 전통시장의 쇠퇴까지. 선호상회의 역사는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다.

다른 양키시장 매장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선호상회 역시 한국전쟁 직후 이 곳에 터를 잡았다. 지금 주인인 조숙현(67)씨의 부친 고(故) 조규학(2019년 작고)씨가 시작한 장사는 1990년대 초반, 딸인 조숙현씨가 물려받았다. 선호상회는 그렇게 60여년을 중앙시장의 터줏대감으로 춘천의 한 곳을 지키고 있다.

▲ 조숙현씨
▲ 조숙현씨

선호상회는 잡화점이다. 커피부터 초콜릿, 사탕은 물론이고 영양제와 보디오일, 수세미 등 팔지 않는 제품을 찾는 게 더 빠를 정도다. 지금이야 중앙시장 길가에 물건을 진열해 놓고 파니 오며가며 손님들이 발길을 멈추지만 198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상황이 달랐다. 양키시장에서 파는 물건들은 ‘밀수품’으로 구분, 시도때도 없이 단속을 나왔기 때문이다. 조숙현씨는 “그때는 미군부대 군인이나 가족들에게 물건을 받아 팔았기 때문에 숨겨놓고 판매해야 했다”며 “실제 내놓는 물건은 적고, 손님들이 찾는 물건은 구석에서 찾아서 주다보니 정말 단골들만 찾는 가게”라고 했다. 그래도 파는 품목들은 그때가 더 많았다. 당시 찾던 고객들은 대를 이어 선호상회 단골 고객이 됐다.

어린 조숙현씨에게 당시 선호상회는 자랑이자 자부심이었다. 당시에는 쉽게 접하기 힘든 초콜릿과 사탕 등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학교가 끝나면 달려오던 곳도 중앙시장 선호상회였다. 1970년대 베트남전에 파병됐던 군인들까지 양키시장에 몰려들면서 중앙시장 일원은 최대 호황기를 맞았다. 조숙현씨는 “중앙시장 입구부터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빼곡했다”며 “물밀듯이 밀려드는 사람들에 떠밀려 장을 보던 시절”이라고 했다. 당시 정말 귀한 음식이었던 햄도 선호상회에서 구할 수 있었다. 조 씨는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햄이나 고기들로 부대찌개를 끓여먹었는데 참 귀하고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며 “지금은 아무리 해도 그 맛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 잡화점인 선호상회에는 사탕과 초콜릿은 물론 영양제와 수세미 등 없는 게 없다. 옛날 ‘아는 사람들만 알았던’ 선호상회는 이제 시민들이 즐겨 찾는 중앙시장의 명물이 됐다.
▲ 잡화점인 선호상회에는 사탕과 초콜릿은 물론 영양제와 수세미 등 없는 게 없다. 옛날 ‘아는 사람들만 알았던’ 선호상회는 이제 시민들이 즐겨 찾는 중앙시장의 명물이 됐다.

조숙현씨를 포함해 3남매가 장성할 때까지 든든하게 버텨주던 선호상회는 1980년대, 수입자유화 정책이 시작되면서 새국면을 맞았다. ‘외국 물품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는 가장 큰 장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 조숙현씨가 물려받은 이후의 선호상회는 아버지가 운영할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대형마트가 잇따라 들어서던 시기와 맞닿아 있어 전통시장에 대한 선호도가 예전같지 않았다. 시장 한 쪽을 모두 차지하던 양키시장도 쇠퇴를 거듭, 이제 6개 점포가 그 명맥을 잇고 있다. 그래도 돌이켜보니, 마음만은 편했다. 조숙현씨는 “아버지 때와 비교하면 품목은 좀 줄었을 지 몰라도 단속을 피해 도망다니는 일은 없었으니 그 점은 참 좋았다”고 말했다.

선호상회의 지난 60년은 한국 현대사 그 자체다. 한국전쟁 이후 탄생해 베트남전 파병, 경제호황기를 거쳐 대형마트 입점까지. 압축된 성장의 시기를 그대로 닮았다. 2000년대 초반 불어닥친 동남아 관광객들을 중심으로 한 한류열풍의 덕을 톡톡히 보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지금은 발길이 뚝 끊겼지만 코로나19 발생 직전까지만 해도 중앙시장과 선호상회는 동남아 관광객들이 즐겨찾던 관광코스 중 하나였다. 조숙현씨는 “우리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시대적인 흐름과 역사”라며 “아쉽기는 하지만 자구책을 마련해 스스로 살아남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짧지 않은 시간 춘천시민들의 곁을 지키면서도 조숙현씨가 놓지 않았던 가치는 딱 하나, 바로 친절이다. 자영업자들이 환영하지 않는, 아침부터 반품하러 오는 손님도 반갑게 맞아 흔쾌히 바꿔준다. 누가 와도 친절하게. 60년을 이어온 선호상회의 목표다.

▲ 잡화점인 선호상회에는 사탕과 초콜릿은 물론 영양제와 수세미 등 없는 게 없다. 옛날 ‘아는 사람들만 알았던’ 선호상회는 이제 시민들이 즐겨 찾는 중앙시장의 명물이 됐다.
▲ 잡화점인 선호상회에는 사탕과 초콜릿은 물론 영양제와 수세미 등 없는 게 없다. 옛날 ‘아는 사람들만 알았던’ 선호상회는 이제 시민들이 즐겨 찾는 중앙시장의 명물이 됐다.

아버지에서 딸로 이어진 선호상회는 조만간 또 다른 주인을 맞을 것 같다. 조숙현씨는 조금씩 다른 주인에게 가게를 건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중학생이 된 딸이 물려받겠다고 나섰지만, 딸 아이가 선호상회를 이어 받으려면 조금 시간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숙현씨는 “아버지가 하던 가게를 내가 이어받았다는 게 보람이지만 나도 이제 일흔”이라며 “그동안 일만 했는데 건강할 때 가족들과 좀 더 많은 경험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선호상회를 바라보는 조숙현씨 눈빛에서는 여러 감정들이 교차했다. 보람과 뿌듯함, 애틋함, 쉽지 않은 세월을 견뎌냈다는 안도감과 자부심까지. ‘장사에 목 매지 않고’ 그저 소풍오듯이, 친구들과 수다 떨러 나오듯이 이어온 게 오히려 장수 비결이라는 조숙현씨. 중앙시장을 든든하게 지켜온 선호상회가 ‘친절한 가게’로 기억됐으면 좋겠다는 그에게 이곳은 어떤 의미일까. “여기는 그냥 뭐 내 삶의 터전이지. 손님이 있으면 있는대로, 또 없으면 없는대로 흘러온 곳이지. 그래도 선호상회 덕분에 아버지가 논도 사고, 우리를 다 길러냈으니 우리 가족에게는 전부이기도 하고. 지금처럼, 시민들 곁에 오래오래 남는 가게가 됐으면 하지.” 진열해 놓은 상품을 보기 좋게 다듬는 그의 손길에서 가게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오세현 tpgus@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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