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남한산성 숭렬전 등 10건 보물 지정예고

▲ 영월 창절사,[문화재청 제공]
▲ 영월 창절사,[문화재청 제공]

사육신과 김시습 등 10명의 충신을 제향하기 위해 세워진 영월 창절사가 보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경기도 유형문화재인 남한산성 숭렬전을 비롯해 강원 영월 창절사, 충북 영동 세천재 등 총 10건의 문화재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하겠다고 29일 예고했다. 종류별로 보면 사묘(祠廟)·재실(齋室) 등과 같은 유교 건축 8건, 내아(內衙)와 석탑이 각 1건이다.

사묘는 선조나 선현의 신주, 영정 등을 모셔두고 제사를 지내는 건물을 말한다. 재실은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건물로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공간 등으로 쓰였다. 내아는 지방 관아 건축에서 지방관의 가족이 생활하는 곳으로 일종의 살림집이다.

영월 창절사는 단종 복위를 꾀하다 목숨을 잃은 사육신과 김시습 등 10명의 충신을 제향하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

다른 사당에 비해 비교적 규모가 크고 사당 외에도 유생들이 모여 학문하는 강당과 동서재(東西齋), 배견루(拜鵑樓·누각) 등의 구조를 갖춰 조선시대 서원과 같은 구성을 보여준다.

▲ 남한산성 숭렬전[문화재청 제공]
▲ 남한산성 숭렬전[문화재청 제공]

남한산성 숭렬전은 병자호란 때 임금이 남한산성에 머물면서 온조왕에게 제사를 지낸 일을 계기로 1638년에 세워졌다. 1661년 현 위치로 옮긴 뒤 정조 때 ‘숭렬전’이라는 명칭이 내려졌다. 숭렬전은 창건 사실이 역사 문헌을 통해 증빙되고, 간결하고 절제된 건축 형식과 구조가 17세기에 건립된 조선시대 사묘의 전형을 따른다는 점에서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다.

▲ 영동 세천재[문화재청]
▲ 영동 세천재[문화재청]

충청 지역을 대표하는 재실 건축물인 영동 세천재는 충주박씨 황간파 박세필이 1691년에 처음 지은 재실로, 그의 부친인 박지찬과 아들인 박수소까지 3대를 모신 공간이다.

세천재는 후손들의 강학을 위한 장소로도 쓰였다. 광복 후에는 독립운동가 성하식이 훈장을 맡아 교육했고, 초대 부통령인 이시영이 시국 강연회를 개최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충신이나 효자에게 임금이 편액을 하사해 마을 입구에 걸어두는 건물인 전남 ‘고흥 여산송씨 쌍충 정려각’과 선조를 모신 ‘강진 해남윤씨 추원당’, ‘강진 해남윤씨 영모당’ 등도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 전주 조경묘 정묘[문화재청 제공.
▲ 전주 조경묘 정묘[문화재청 제공.

전주 이씨의 시조인 이한과 그의 아내의 위패를 모신 전북 ‘전주 조경묘 정묘’와 조선 전기 문신인 손소의 묘를 조성하면서 망자의 명복을 빌고자 만든 경북 ‘포항 상달암’도 보물로서의 가치가 높다고 평가됐다.

▲ 김제 내아[문화재청 제공]
▲ 김제 내아[문화재청 제공]

유일한 내아 건물인 ‘김제 내아’는 1749년 무렵 지어졌다.

이 건물은 한옥에서 몸채의 방과 방 사이에 있는 대청마루를 경계로 양측 공간의 성격을 달리하는 등 독특한 구성을 띈다. 조선 후기 지방관의 일상을 살펴볼 수 있는 드문 사례로도 평가받는다.

▲ 경주 전 염불사지 동서 삼층석탑 전경(오른쪽 동탑)[문화재청]
▲ 경주 전 염불사지 동서 삼층석탑 전경(오른쪽 동탑)[문화재청]

통일신라시대 석탑인 ‘경주 전(傳) 염불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8세기 전반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두 탑은 모두 상·하 2층의 기단으로 돼 있고 높이가 5.85m에 이른다. 복원 과정에서 일부 새로운 부재가 사용됐으나 전체적인 양식과 기법 등을 볼 때 통일신라 석탑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여겨진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 기간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절차를 거쳐 보물 지정 여부를 확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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