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에 대한 도발적 의문, 자기중심 사고는 사람의 본성

▲ 사람은 대체로 이기적 동물이다. 내로남불은 사람의 본성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내로남불은 악한 것인가.
▲ 사람은 대체로 이기적 동물이다. 내로남불은 사람의 본성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내로남불은 악한 것인가.

오래된 의문이 있다. 사람의 본성에 관한 것이다. 사람은 대체로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 ‘대체로’라고 한 것은 모든 사람이 이기적이지는 않다는 얘기도 된다. 이기적인 것이 반드시 옳지 않다고 할 수도 없는 이유는 상황에 따라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서두가 길었다. 사람의 이기적인 속성이 부정적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내로남불. 어느 날 툭 떨어진, 이 시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이 됐다. 이 말은 1996년대 국회의장을 지낸 박희태 의원이 공적인 자리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알려졌다. 15대 총선 직후 여당에서 무소속 의원 등 11명을 영입해 여소야대 정국을 여대야소로 바꾸자, 야당은 ‘의원 빼가기’라고 반발했는데, 이에 박 의원은 “야당의 주장은 내가 바람을 피우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반박하면서 내로남불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후 정치권에서 상대를 공격하는 소재로 이 말을 활용하면서 자연히 대중적으로도 알려지게 됐다. 비슷한 의미로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뜻의 아시타비(我是他非)가 있다.

내로남불의 진화는 계속됐다. 이 말은 정치적 수사에 그치지 않고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을 이중인격자로 낙인찍는 일에 사용되기도 했다. 그가 어떤 설명을 해도 그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변명이라고 여기게 강제했다. 집단이 한 개인에게 가해지는 내로남불 공세는 인격 살인 이상의 잔혹함을 담고 있다. 남에게 엄격하고 자신에게 관대한 심리 기제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보편적인 감정, 인지상정(人之常情)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이 말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력을 의미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전제된다면 내로남불과 같은 상대적 공격이 사회적으로 통용되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 내로남불은 정치적 수사에 그치지 않고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이중인격자로 낙인을 찍는 결과를 낳았다. 이로 인한 사회적 폐헤더 적지 않다.
▲ 내로남불은 정치적 수사에 그치지 않고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이중인격자로 낙인을 찍는 결과를 낳았다. 이로 인한 사회적 폐헤더 적지 않다.

속과 겉이 다른 것이 불공정, 파렴치한 것이 됐다

내로남불이라는 악마의 프레임이 지배하는 사회

내로남불은 속과 겉이 다른, 표리부동한 비양심의 인성을 직접 겨누고 있다. 불공정이라는 상징화가 구축된 지 오래됐다. 나아가 양심을 저버린 파렴치라는 악마의 프레임이 덧씌워져 벼렸다. 여기서는 누구든 자유롭지 못하다. 결과적으로 서로에 대한 비방과 조롱이 일상화됐다. 누가 더 못났냐, 누가 더 나쁘냐의 소모적 싸움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인지상정이 들어설 자리마저 빼앗아 버렸다. 공감과 배려가 없는 사회를 강요하는 지경까지 왔다. 모두가 정치권에서 조장했고, 이는 사회적으로 파급됐다.

가장 강력한 인상을 남긴 것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내로남불 공세였다. 그의 신사적 이미지와 다르게 자녀들의 진학 과정에서 편법이 동원됐다는 것이 공격의 빌미가 됐다. 정치권에서는 내로남불이 여·야 간 상대를 향한 공격 소재로 많이 사용됐지만, 아무래도 여당이 빌미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지난 대선에서도 내로남불이라는 프레임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정권교체가 되자, 이번에는 대통령과 정부, 집권 여당이 내로남불 공세에 시달리는 신세가 됐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해외순방에 대해 야당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불과 48초 회동과 한일 정상회담 과정에서의 굴욕, 대통령의 비속어 사용 등을 들어 외교참사라며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여당은 야당의 외교참사 공세에 대해 이전 정부의 외교참사에 비하면 이번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역공한다. 이 또한 내로남불 공방 아닌가. 어느새 내로남불 프레임 씌우기가 정치공세의 전술이 됐다.

▲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내로남불은 내로남불로 덮는다” 진화하는 ‘내로남불’

내로남불은 상대를 비하하는 수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는 각자의 욕심에 근거하기 때문에 서로 양해하고 이해하는 사회를 방해한다. 정직함을 내세워 상대를 향해 비방과 조롱을 하는 행태에는 인간의 이기적 심리가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어느 정부보다 도덕적이라는 자부심이 강할수록 내로남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젊은 세대들이 86세대를 싫어하는 까닭도 속 다르고 겉 다른 이들의 행태 때문 아니겠는가. 지금 정부도 내로남불에서 자유롭지 못할 수밖에 없다. 내로남불이라는 악마적 프레임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한 그렇다는 것이다.

이제는 이를 깨야 한다. 사람은 자기중심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라는 배려와 용서의 심리가 부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솔직해져야 한다. 나에게 관대한 만큼 남에게도 관대해져야 한다. 사람이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 그 시선으로 다른 사람을 보면, 그것이 솔직한 것이고, 또한 양심적인 것 아니겠는가. 그래야 우리 사회가 평안을 찾을 것이다.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소모적인 정치가, 상처받은 정치가 사라지고 덧셈의 정치가 된 것이다. 더 이상 ‘내로남불’이 진화되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다.

강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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