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송호근 한림대 석좌교수
■대학·언론·종교 쓴소리
교수들 페이퍼 프로듀서화
공론을 가장한 불만·속풀이
거시적 안목 벗어난 종교
개인에만 집중해 공백 발생
■정치권 진단·과제
용산대통령실 경험의 단일화
법조·관료 치중 정책역량 부족
저성장 국면 자본주의 흔들
정부의 정책적 보완 필요
■강원 미래 변화상
대기업·공공기관 유치 앞서
지역 매력 포인트 정립 중요
강원도 생태도시 공간 앞세워
실버타운·요양원 메이킹을

송호근 한림대 석좌교수가 춘천으로 돌아왔다. 한국을 대표하는 사회학자인 송호근 교수는 “민주주의 35년 지난 지금, 정치와 종교, 언론이 제 역할을 잃어버렸다”며 광장이 사라지고 디지털공간으로 숨어드는 현실을 우려했다. 지역대학, 지방소멸에 대해서는 “젊은층도 동의할만한 매력 포인트가 중요하다”며 “10년 정도를 내다보고 국토 전체를 균질화하는 방안을 찾아야한다”고 강조했다. 송호근 한림대 석좌교수를 최근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진행=송정록 강원도민일보 편집국장

-30년 만에 한림대로 돌아왔다.

“1994년 봄에 갔으니 28년만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왔다. 한국 대학이 중앙으로 너무 많이 집중이 돼 있다. 지역이 살려면 대학이 활성화 돼야 한다. 대학은 지역의 중심기지다. 내려와보니 대체적으로 생기가 부족하고 활력도 적다.”

-지역 대학 전반적인 문제다.

“학생이 자꾸 감소한다는 문제도 있고 대학에 닥친 위기요인이 복합적인데 효율적으로 돌파해내기에는 자원이 부족하다. 학생, 자원, 재정 모두 다 부족하다. 그러니까 교수들이 관심이 있어도 지역사회 문제에 직접적으로 뛰어드는 게 상당히 어렵고 그러다보니 연구실에만 머물고 있다. 대한민국 전체가 다 그렇다. 과거에는 교수들이 사회적인, 공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보이스를 냈지만 이제는 논문과 투쟁하느라고 문 닫아 걸고 논문 생산에 정신이 없다. 페이퍼 프로듀서(논문만 쓰는)가 됐다.”

-예전에는 대학이 맡던 역할이 적지 않았는데.

“대학이나 종교, 언론 모두 마찬가지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사회 문제 안에는 대학과 종교, 언론이 있었다. 이 세 기구가 지난 30년 간 급격하게 기운을 잃고 영향력을 잃었다. 결핍에 시달리는 거다. 종교도 거시적인 안목에서 벗어나 자꾸 구태로 들어가고, 인생 구조적인 문제, 개인적인 문제에 집중하니 공백이 생긴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대신할 수 있는, 빈 자리를 채울 수 있는 기구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엄청난 공간이 비어있다.”

-대학이나 종교, 언론이 앞으로 역할이 있을까.

“중요한 질문이다. 의도적으로라도 보이스를 내야 한다. 국립대학 교수, 국립대 총장의 보이스가 개별적이든 집단적이든 나와줘야 한다. 그걸 안했기 때문에 영향력이 줄었다. 결국 지성의 소멸이다. 거시적인 문제로부터 후퇴했다. 민주주의 35년만에 닥친 지성의 몰락이다. 이 빈자리를 디지털 기계들과 잡담, 공론을 가장한 중얼거림, 불만, 속풀이 등이 채우고 있다.”

-언론도 그 공백을 채우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목을 옥죄는 규제라든가 외적인 한계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실은 법적인 문제, 사회적 다툼을 풀어줘야 하는 게 정치인데. 거꾸로 됐다. 정치의 사법화는 말이 근사하지 결국 싸워서 문제 일으키고 안 되면 법원에 가서 제소하는 거 아닌가. 이게 무슨 꼴인가.”

-용산 대통령실은 어떻게 보나.

“경험이 없다. 경험이 없을 때 실수할 가능성이 커지고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정치적 판단에 의해서 적절하게 변형시키는 지혜도 없다. 경험의 부족은 지혜의 부족이고 지혜의 부족은 쓸데없는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많다는 뜻이다. 그 근처에 정치를 하는 사람은 없고 주로 법조문만 들고 다니던 사람들 뿐 아닌가. 지금 정권은 법조인과 관료 두개 뿐이다. 박근혜 정권과 비슷하다. 박근혜 정권은 여기에 군인이 하나 더 추가됐었다.”

- 구체적인 정책을 본다면.

“지금 용산 대통령실은 경험이 단일화 돼 있다. 들어가는 재원들이 대체적으로 한 쪽으로 쏠려있다. 정책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은 정책의 미진함으로 나타난다. 소주성(소득주도성장)을 완전히 번복하려면 이를 회복할 수 있는 정책이 뭔가 나와줘야 한다. 다섯달이 지났는데 이 정부를 대변하는 가장 중요한 정책 개념이 뭔가. 물어보면 없지 싶다. 사회적 정책이 안 보인다. 심각한 문제다. 야당이 워낙 숫자가 많으니 거기에 눌려있는 측면도 없진 않지만 그래도 정책으로 돌파할 수밖에 없다. 야당이 저지 또는 방해하지 않을 수 있는, 정권이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정책들이 있다. 세금 낮추겠다고 하는건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과거 민주당 정권이 올려놓은 것을 낮추는 건 누구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여러가지 위기가 오는 상황에서 방파제를 할 수 있는 바위가 있어야 한다.”

- 수백조를 쏟아부어도 지방소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지방으로 와 보니 사람들을 지역으로 끌어 앉힐 수 있는 구심점이 보이지 않는다. 흔히 대기업 유치하면 된다고 하는데 산간지역에 뭐하러 대기업이 오겠냐. 비용도 엄청 많이 들텐데.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공공기관을 밖으로 옮긴다고 하는 것도 끝난 얘기다. 결국 매력 포인트를 무엇으로 만들어주느냐, 젊은 사람들도 ‘이 정도면 되겠다’ 할 수 있는 매력의 포인트가 중요하다. 귀농을 비롯해서 여러가지 시도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당장 효과는 없겠지만 10년 정도를 내다보고 ‘국토 전체의 인구 분포를 어떻게 하면 균질화 할 것 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김진태 도정은 삼성 반도체 유치에 나섰다.

“대기업 환상을 버려야 한다. 내가 SK하이닉스 사외이사다. 전반적으로 봐서 기업, 공장을 유치하는건 어렵다. R&D 인력은 어느 지역 밑으로는 안 내려간다. SK도 용인에 100만평 땅을 구입, 다시 서울로 올라가고 있다. 공장을 강원도로 옮긴다는 것에 찬성할 대기업이 없다. 제조업 공장을 가져오는 것도 임팩트가 없다. 전략이 잘 못 됐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비전을 찾아야 하나.

“직무 구조가 어떻게 바뀔지를 봐야 한다. 20년 후, 2050년의 경우 생활 구조가 어떻게 바뀔 것인지 예측하고 거기에 맞춰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강원도가 해 볼 수 있는 것은 요양원이라고 생각한다. 실버타운 개념이다. 최고의 생태도시가 가능성이 있다. 워크스테이션, R&D 센터, 생태적인 삶의 공간을 기반으로 요양원, 의료시설로 이미지 메이킹을 하면 춘천만한 곳이 없다.”

-코로나19가 끝나간다.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1919년 스페인독감 이후 정확히 100년만에 코로나19가 출현했다. 21세기는 이제 시작이다. 20년 전이 아니다. 20세기도 1919년에 시작됐다. 지난 100년 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이제는 디지털에 완전히 빨려 들어갔다. 문명사 측면에서 보면 21세기는 2년 전, 코로나와 더불어 시작했다.”

-앞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불평등 문제다. 전세계가 다 겪고 있다. 기후위기가 심화되고 인종차별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저성장이 포함된다. 이 네 가지 문제가 디지털 문명, 21세기 문명을 억제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다. 이 문제는 앞으로 100년 간 계속되고 심화될 거다. 20세기가 열릴 때는 성장과 번영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21세기는 굉장히 우울하게 출발하고 있다. 각 개별국가가 어떤 정책을 통해 이 문제들을 밝게 전환시키느냐에 21세기가 달려있다.”

-결국 정치가 풀어야 한다.

“그런데 정치권은 저러고 있다. 그래서 우울하다. 방법도 별로 없다. 20세기에는 최고의 엘리트들이 정치권으로 진출했다. 인재가 충원되고 재생산 되는 구조였다. 지금은 정치권을 꺼리고 거리를 둔다. 퀄리티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양극화 문제는 어떤가.

“여전히 지속될거다. 저성장의 함수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성장을 구가한다는 명제는 틀린 것 같다. 우리사회에 민주주의가 시작된 지 딱 35년만에 대체적으로 평등이라는 개념이 스며들었지만 정치가 저 모양인 이유는 성장이 안 돼 그렇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게 정치인데 이 같은 갈등은 30년은 갈 것 같다. 2050년까지는 이런 상황이 유지될 것 같다.”

-자본주의는 200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다.

“저성장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저성장 국면에서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처럼 맥을 못 춘다. 정부가 보완해줘야 한다. 전체적으로 봐서 정책 목표 자체를 어느 정도 하한하고 사람들의 기대치를 낮게 해야 한다.”

-삶의 양식은 어떻게 변할까.

“사람들이 전부 다 자기 마음속, 밀실로 들어간다. 코로나19로 경험해보지 않았나. 가보니까 놀 곳이 있는거다. 디지털문명이 이를 다 받쳐준다. 과거 광장의 모습을 보기에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자기만의 방을 안주터, 놀이터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

-지역으로 돌아왔는데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돌아와서 행복하다. 개성 있는 대학을 만들고 싶다. 지역의 중심기관은 대학이다. 대학의 문은 늘 열려있어야 한다. 지역의 지식수준을 높이는 방법, 지역에 잠재돼 있는 자원을 끄집어 내는 힘을 키워 줘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사랑 받는 대학을 만들어보고 싶다.” 정리/오세현



■ 송호근 교수는

서울대 사회학과 학·석사, 하버드 사회학과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1994년까지 한림대에서 근무했으며 서울대 최초의 인문·사회학 분야 석좌교수로 임용됐다. 포항공대 인문사회학부 석좌교수를 역임하다 이달부터 한림대에 복귀, 한림대 석좌교수와 도헌학술원장을 맡고 있다. ‘칼 만하임의 지식사회학 연구’를 처음 출간한 이래 사회학 관련 저서를 포함해 40여권의 책을 썼다. 대표 저서로 ‘인민의 탄생’, ‘시민의 탄생’, ‘국민의 탄생’ 등이 있으며, ‘강화도’, ‘다시, 빛 속으로’ 등 소설책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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