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열여드레 해 전의 일이다. 2004년 여름 이 주일간의 일정으로 핀란드 연수를 다녀왔다. 핀란드산 노키아 핸드폰과 삼성 핸드폰이 전쟁을 벌이던 시기였다.

당시 한국은 ‘삼성’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핀란드의 자존심 노키아 시장을 야금야금 잠식하며 세계 핸드폰 시장 판도를 재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발트해 아가씨’ 헬싱키 시내를 오가는 지하철(HKL)들이 허리에 두르고 있는 것은 삼성 핸드폰 광고였다. 남항을 마주 보고 있는 헬싱키 시청에서 도심으로 이어지는 공원의 입간판도 삼성을 홍보하고 있었다.

일본 작가 무레 요코의 소설 ‘카모메 식당’의 무대는 핀란드다. 일본 여성 세 명이 다양한 인연으로 헬싱키에서 만나 주인공 사치에가 개업한 ‘카모메 식당’을 무뚝뚝한 핀란드 사람들의 맛집으로 만들어 가는 이야기다. 무계획 여행자로 ‘독수리 5형제’ 주제곡을 줄줄 외는 미도리와 가족에게 상처받고 훌쩍 핀란드행 비행기에 오른 마사코가 조연이다.

마사코가 생판 모르는 핀란드를 목적지로 선택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맨손 기타 연주하기’, ‘부인 업고 뛰기’, ‘핸드폰 멀리 던지기’를 즐기는 핀란드 사람들을 보고 호기심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지구촌을 초연결 사회로 만들어가는 핸드폰 종주국에서 ‘핸드폰 멀리 던지기’는 의외였다.

지난 15일 성남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 등의 디지털 부가 서비스가 사흘 이상 먹통이 됐다. 필자의 메일도 지난 15일 오후 2시46분 이후 뚝 끊겼다 18일 밤 10시20분 겨우 되살아났다. 매일 수백건씩 쏟아졌던 메일 서비스가 중단되며 큰 불편을 겪었다.

매사 명암이 있기 마련이다. 사흘 동안 초과잉 디지털 세상을 떠나 은자(隱者)로 살아간 소중한 시간이었다. 또한 5000만 명이 이용한다는 디지털 공간에서 자연(自然)으로 되돌아가 가을볕을 벗삼아 사색을 즐겼다. 그리고 마사코가 ‘핸드폰 멀리 던지기’에 매료된 이유도 공감하는 하루하루였다.

남궁창성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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