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춘천박물관은 10월 25일 개관 20주년을 맞아 초충도를 주제로 한 특별전 ‘미물지생, 옛 풀벌레 그림’ 전시회를 연다. 김홍도와 정선이 그린 초충도 등이 선보이지만 단연 이목을 끄는 것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초충도 10폭 병풍’일 것이다. 신사임당이 그렸다고 전하는 작품이다. 초충도는 신사임당의 미술세계를 알리는 대명사로 굳어있으나, 1504년에 태어나 1551년 생애를 마감한 신사임당이 살던 그 시기에는 대표작이 달랐다.

같은 시기에 살았던 어숙권은 포도도와 산수화가 뛰어난데, 특히 산수화는 안견에게 버금간다고 언급했다. 소세양(1486~1562)은 직접 신사임당의 산수화를 감상하고 감탄하며 ‘동양신씨산수화족’이라는 감상시를 남겼다. 시에는 ‘해질녘에는 도인 한 사람 나무다리 지나가고 / 막 속에선 늙은 중이 한가로이 바둑 두네’라는 구절이 포함돼 있다. 이 산수화는 현전하지 않지만 시냇물, 첩첩이 둘러싼 산, 바위, 숲, 돛대, 아지랑이 등의 시구가 등장해 해질 무렵 풍경의 운치를 알린다.

산수화를 직접 감상한 이경석(1595~1671)은 필묵이 유려하고 경치마다 절묘함에 이르렀다고 기록을 남겼다. 아들 이이는 어머니의 대표작으로 포도 그림을 꼽았다. 이항복(1556~1618)은 신사임당이 그린 대나무는 가지와 잎의 묘사가 정밀하고 마치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기운이 있다고 호평했다.

지금과 달리 신사임당의 그림을 직접 감상한 이들은 초서체 글씨와 함께 산수화, 대나무, 포도 그림에 찬탄했다. 조선 후기 들어 대표작이 산수화에서 초충도로 바뀐 배경을 박지현 연구자는 논문 ‘화가에서 어머니로:신사임당을 둘러싼 담론의 역사’에서 분석했다. 남성적인 장르로 인식했던 산수화보다는 여성이 집안에 머물면서 그림으로 재현하기엔 초충도가 이이의 어머니 이미지에 더 어울렸기에 의도적인 교체로 파악했다.

한 개인의 정체성과 이미지가 타의에 의해 특히 정치적 의도로 권력층에 의해 훼손되고 바뀌는 경우를 요즘 목격하면서 신사임당을 떠올렸다. 박미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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