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7일, 서울 대표 명소 이태원에서 발생한 압사 참사 열흘째로 월요일이다. 평소와 다름없이 직장 출근을 서두르고, 학교로 등교하고, 집에서 늦잠 자는 자녀를 깨우며 지난주 월요일 아침을 맞았을 156명 각각의 일상은 이번 주 월요일도 계속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토록 바랐던 정규직 전환 사령장을 받기로 한 10월 31일 아침 그 청년은 이 세상에 없었고 오늘도 없다.

이제는 ‘이태원 참사’ 대신 ‘10·29 참사’로 바꾸자는 제안이 나왔지만, 사태에 대한 충격과 감정은 아직 ‘10·29’라는 객관적인 숫자로 거리를 둘만큼 진정되지 않았다. 지난 주말 내내 언론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여러 경로를 통해 희생자 사연이 알려졌다. 취업 기념으로 친구를 만나러 왔다가, 유난히 사이좋은 중학생 딸과 어머니가 방문했다가 참변을 당했다. 한국을 사랑했던 한 외국 청년의 아버지는 이국에서 차가운 주검을 안아야 했다.

20대가 가장 많고 10대도 여럿이어서 교복을 입은 앳된 동생이 언니의 고운 영정을 들기도 했다. 운구차를 붙잡고 눈물로 범벅된 유족의 오열은 선명하지 않은 화면 너머에서 들리는 듯했다. 사랑하는 이가 떠난 비탄은 대체 불가능하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내 보물이잖아요’라고 했던 그 대상을 잃은 상실감과 고통은 형언이 어렵다. 이태원 참사 바로 그날 비애의 순간은 무한히, 불현듯 수없이 마주해야 하기에 애도는 망각이 아니라, 기억을 공유하는 것으로 진행해야 한다. 2014년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기억하는 장은 너무 늦게 만들어져 안타까움이 컸다.

또한 ‘희생자에게 책임을 다했다’라며 말할 수 있을 때라야 애도에 이를 수 있다는 점에서 책임자 처벌 수사와 동시에 독립적인 특별조사위원회를 조속히 발족해야 한다. 재난조사 전문가들은 조사위원회 활동을 방해하는 세력의 첫번째로 ‘정부와 국가기관의 관료’를 꼽고 있다. 대통령실부터 정부 부처 지휘부, 일선 현장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조사하는 시민사회 특조위를 가동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조사위 운영의 잘못된 점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 정상적인 애도의 길이자 동시에 불완전한 애도에서 벗어나는 방법 중 하나이다. 박미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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