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근원적 감각 공유…‘나중에 밥 한번 먹자’
생존 직결 본능적인 ‘먹는 일’
살아간다는 것을 ‘먹고 산다’로 표현
세계적 고유명사가 된 ‘먹방’
제한된 카메라 프레임 속에서
먹는 행위 보여주는 게 전부
단순하지만 사람들에게 인기
크리에이터-콘텐츠 소비자
음식 매개 모든 감각 공유·대리만족
종종 인사가 된 ‘밥 한번 먹자’
어마어마한 관계적 의미 내포

먹는다는 건 뭘까?

먹고 산다는 건 또 뭘까?

‘먹는다’는 건, 생존을 위한 인간의 기본적인 행위이다. 그래서 살아간다는 말을 ‘먹고 산다’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먹고 공부하고 일한다. 아무튼 대부분은 먹고 사느라 바쁘다.

생존과 직결되는 본능적인 일이자, 태어나면서부터 해왔던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이 콘텐츠가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종종 생각하곤 한다. 어느새 고유명사가 되어 세계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용어인 먹방(mukbang 또는 meokbang)의 유행과 인기를 생각해보면 그 생각은 더 깊어진다. 그야말로 먹방은 ‘먹는 쇼(eating show)’로 번역될 만큼, 제한된 카메라 프레임 속에서 먹는 걸 보여주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카메라 앞에서 음식을 먹는 사람들, 또 그걸 한없이 보고 있는 사람들. 그 단순한 쇼가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다는 건 유튜브 구독자수와 조회수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내 유튜브 채널에서 아이돌 그룹을 포함한 음악방송을 제외하고 나면, 먹방 채널이 상위 랭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구독자수를 보유한 먹방 채널의 주인공은 심지어 얼굴도 보여주지 않는 채, 먹는 입과 씹고 삼키는 소리만을 들려준다. 사람들은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서 식도로 넘어가기까지의 과정을 보고 듣는다. 먹는 것이 보고, 듣는 감각까지 자극하고 있기 때문일까? 이 채널에는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그러니까 ‘자율감각쾌락반응’으로 번역되는 신조어가 추가된다.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먹는 것’을 보고, 듣는다.

먹방을 소비하는 순간은 본능적 감각의 자극으로 이어진다. 후루루룩 라면이 입 안으로 빨려드는 소리, 초코 과자가 어금니 사이에서 바삭 부서지는 소리, 아삭거리는 김치와 총각무가 한 입 베어지는 소리, 붉은 육질의 고기가 불판에서 지글거리는 소리, 양은 사발에 담긴 막걸리 한 모금과 투명한 소주 한 잔이 “캬” 하는 외마디 감탄사와 함께 식도를 넘어가는 소리. 소리에 대한 사람들의 폭발적인 반응은, 먹고 사는 일이 간단하거나 단순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화면과 소리로 자극된 감각은 기어코 식욕과 배달앱의 잠금을 열어버리고 만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먹는 것’이 콘텐츠가 되고 큰 인기를 얻게 되자, 먹방을 콘텐츠로 하는 크리에이터도 덩달아 많아지고 있다. 그냥 먹는 것만으로는 기존의 채널을 뛰어넘기 어려우니 많이 먹기, 요리하면서 먹기, 특이한 간식만 먹기, 단 것만 먹기, 예쁘게 먹기, 야무지게 먹기 등으로 차별성을 가지려고 애쓰기도 한다. 사람들은 밥을 먹고, 보고 듣는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들은 구독자수와 조회수로 이어진다.

먹방 콘텐츠가 가지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제법 긴 영상물이다. 일반적인 영상 콘텐츠에 대한 사람들의 집중력은 길지 않다. 유튜브 쇼츠(Shorts)가 만들어진 것도 이러한 요인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먹방 콘텐츠는 제법 길게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소비한다. 긴 시간 동안 음식이 식도 너머 위장으로 서서히 사라지는 걸 보면서 사람들은 대리만족과 행복감, 안정감을 느낀다. (댓글에 따르면 그렇다.)

이런 저런 음식을 대신 먹어달라고 부탁하는 유저들, 그걸 다 먹어줘서, 맛있게 먹어줘서 고맙다고, 먹는 것만 봐도 마음이 편하다는 다국적 댓글은 먹는 것이 생존의 욕구와 크게 관계가 없다는 걸 보여준다. 음식을 매개로 화면 안팎의 크리에이터와 콘텐츠 소비자들은 인간의 근원적인 감각을 공유한다. 밥은 시각과 청각과 미각 사이를 넓게 포진한다.

사람들은 종종 ‘나중에 밥 한번 먹자’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은 인사로 주고받는다. 생각해보면 같이 밥을 먹자는 그 흔한 인사는, 인간이 가진 모든 감각(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공유한다는 어마어마한 관계적 의미를 갖는다. 오늘도 우리는 먹는다, 먹고 산다. SNS로 주고받는 맛있게 먹으라는 말, 밥 거르지 말라는 말, 많이 먹으라는 흔한 말은, 무심하게 따뜻한 안부가 된다.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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