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꿈꾸고 상상하라’ 몽환적인 작품의 비결
은행원 그만두고 꿈 위해 화가의 길 걸어
자연 속 다양한 캐릭터 등장 ‘산수몽’ 작업
만화·한국화 선 주법 + 채색 느낌 재해석
“나만의 스타일 만들때까지 다양한 실험”
펀딩 통해 작가들 모여 아트팩토리 설립
내달 서울아트쇼 전시 등 ‘왕성한 활동’

▲ 이재열 작가의 작품
▲ 이재열 작가의 작품

11월 어느 날, 아트팩토리 후의 문을 열고 ‘마음껏 꿈꾸고 상상할 수 있는 곳’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재열 작가의 ‘산수몽(山水夢)’ 전시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곳에는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신기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재열 작가는 끊임없이 다양한 시도를 해온 작가다. 동서양의 고전을 그의 시각으로 변형하고 변조한 작업인 ‘현대인의 초상’, ‘조선의 그림을 훔치다’ 시리즈 이후 2018년부터는 자연 속에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산수몽으로 이어졌다. 이번 산수몽 전시는 전에 비해 더 자연스럽고 재미있는 캐릭터들이 다채롭게 등장하여 상상력을 자극하는 몽환적이고 재미있는 전시였다.

▲ 이재열 작가의 작업실
▲ 이재열 작가의 작업실

“‘조선의 그림을 훔치다’부터 시작된 산수몽은 과도기를 거쳐 조금씩 다듬어져 산수몽 캐릭터로 이제 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입니다. 씨앗과 다양한 캐릭터를 그리게 된 건 제가 상상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 제 상상을 충족시켜 줘서죠.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캐릭터에는 만화적인 느낌도 있을 겁니다. 산수몽은 만화와 한국화의 선 주법이라든지 채색의 느낌을 합치시킨 거죠. 자세히 보면 선의 떨림을 볼 수 있어요. 선의 주법을 제 식으로 만들어 낸 것입니다. 독특하다고 할 수도 있고 만화 같다고 느낄 수도 있어요. 제 그림은 본다는 개념보다 뭔가 찾아보기를 바라는 거라 관객들이 그림 가까이 다가서길 권해요. 제 그림을 제가 봐도 재미있을 때가 있어요.”

이재열 작가는 은행원에서 화가가 된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그는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주택은행에 취업하면서 은행원이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그의 책과 노트에는 온통 그림밖에 없었다. 군대에서도 그림을 계속 그렸는데 그가 따랐던 선임이 ‘그림이 그렇게 좋으면 미대에 가라’고 충고했다. 그는 고민 끝에 제대하고 복직했던 은행을 그만두고 미대 입시를 준비했다.

▲ 이재열 작가의 도록
▲ 이재열 작가의 도록

10개월간 미술학원에서 야전침대를 놓고 숙식하며 입시 준비를 했다. 그에겐 처음이자 마지막인 도전이고 떨어지면 끝이라는 절박감으로 잠도 안 자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면서 절체절명이라는 생각으로 집중하니 그림이 빨리 늘었다. 그렇게 그의 나이 23세가 되던 1993년에 미대에 입학했다. 미대 졸업 후 학교 앞에서 작업실을 구해 친구와 작업을 계속하다가 채색에 대한 갈증으로 친구와 함께 중앙대 대학원에 입학했다.

“대학원 시절은 미술 붐이 일었던 시기라 그림이 많이 팔렸지만 저는 남들보다 감각이 뛰어나지 않다는 생각으로 계속 실험하고 있었어요. 호기심도 많고 실험하기 좋아해서 그 시기에도 실험 중이어서 내 그림이라 할만한 그림은 없었어요. 그리는 것에 자신이 생겼을 때 드문드문 그림이 팔렸어요. 제 스타일을 만들 때까지 다양한 실험을 했는데 다른 친구들은 다 자리를 잡았는데 나만 계속 이런 건 아닌가 싶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을 것 같아 할 수 있는 건 다 시도해봤죠. 그때 그림이 안 팔렸으니 그렇게 그릴 수 있는데 잘 팔렸다면 아마 그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랬다면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고 못 바꾸게 되었을 것이고 작업을 끌고 갈 수 있는 동력이 없어졌을 겁니다. ‘조선의 그림을 훔치다’ 이후 조금씩 나아지면서 자리를 잡게 된 거죠.”

▲ 이재열 작가
▲ 이재열 작가

그는 역마살이 있어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성향이어서 이사를 자주 다녔다. 일산, 수원을 거쳐 원주 노림으로 왔다. 작업할 공간이 부족해 공간을 물색하던 중 친구가 권해준 곳이 노림이었다. 특별히 지역을 고려한 것이 아니었고 적당한 공간이 필요했으므로 2015년에 노림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후 노림에 1년 정도 머물다가 다른 작가들과 함께 아트팩토리 후를 만들었다.

아트팩토리 후는 2007년부터 노림리의 폐교를 창작 공간 노림스튜디오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창작과 전시 활동을 해왔던 작가들이 2015년 노림을 비우게 되면서 만들어졌다. 강지만·윤기원·이재열·김용석 작가 넷이 후용리 마을창고를 빌려 크라우드 펀딩으로 미술관을 만들어 창작과 전시 공간으로 직접 꾸린 곳이다.

▲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이재열 작가
▲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이재열 작가

아트팩토리후는 이웃한 극단 노뜰과 함께 다양한 예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올해도 아트팩토리후에서 후용아트페허, 생태계 레지던시 in 문막에 참여했고 개인전도 열었다. 초대 전시로 대전 DTC 기획전, 강원트리엔날레, 이상원미술관 변형된 세계 3인전 등 전시에 참여했고 12월 코엑스의 서울아트쇼 전시가 남아있다.

이번 전시된 작품에서는 녹색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그는 녹색이 자연의 색이기도 하고 온기와 시간이 합쳐지는 색 같아서 많이 쓰게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특정한 색보다는 현실보다 비현실적으로 판타지로 그리는 것이 주된 골격이어서 색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그는 “앞으로도 산수몽을 그릴 것 같고 산수몽 속에서도 변화는 보일 것 같다”며 “하나만 고집할 수도 있고 작업을 하다가 뭘 그려야 할지 모르는 순간이 오면 빠져나와 다른 작업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그림은 관객들을 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세계로 초대해 그 세계에서 특별한 존재를 만나고 그로 인해 즐거운 상상을 하게 한다.

현실 세계를 바탕으로 한 비현실의 세계가 궁금하다면 아트팩토리후로 가서 그가 그려낸 백일몽 같은 그림 속으로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시인·문화기획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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