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성향을 떠나, 신영복 교수의 글씨는 국민들에게 친근한 서체로 다가왔다. 조정래의 소설 ‘한강’ 표지에 친필을 썼으며, 소주 00처럼 포장지와,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등 명문과 제목에 자신만의 글씨체를 남겼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람이 먼저다’ 슬로건,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된 문구에 그의 글씨체가 주로 쓰였다. 또한 윤도현과의 인연으로 YB 8집 ‘공존’과 15주년 기념 앨범 ‘나는 나비’에 글씨를 써 주기도 했다. 그의 서체는 서민적 체취와 정서를 독특한 서풍에 담아냈다는 평을 받았다. 신영복 서체로 인해 한글의 아름다움을 새삼 느낄 수 있다는 반응도 있다.
그의 글씨는 지난 2016년 속초에 문을 연 강원진로교육원 표지석에도 새겨져 있다. 최근 이 표지석을 놓고 정치색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23일 신경호 강원도교육감은 “진로교육원에 갔더니 신영복 씨의 글씨가 큰 돌에 새겨져 있더라. ‘이건 아니지 않느냐’”라고 전했다. 강원도 교직에 몸담았던 분 중에서 국전에 입상하셨던 분의 글씨로 바꾸기로 했다는 것이다. 신영복 교수 서체는 올해 들어 각지에서 교체 움직임을 보인다. 이미 국가정보원과 경기도교육청은 신 교수의 서체가 쓰인 원훈석과 직인을 바꾸었고, 지난 10월 강릉시는 ‘허균·허난설헌 기념관 현판’을 다른 글씨체로 변경했다. 교육계 한 인사는 부끄러운 일이라며 “교육기관에서 문제 삼는 것 자체가 안타깝다”고 했다. 글씨마저 사상과 이념의 잣대로 재단되는 현실이 서글프다. 2022년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강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니 믿을 수 없을 뿐이다. 이수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