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전 대통령이 2일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사저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면담하고 있다.(연합뉴스)
▲ 문재인 전 대통령이 2일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사저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면담하고 있다.(연합뉴스)

“남은 임기 최선을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서 잊혀진 삶, 자유로운 삶을 살겠다” 치열한 대선이 끝나고 임기 40일을 남긴 지난해 3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은 불교계 원로들과 만난 자리에서 ‘잊혀진 삶을 살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희망은 이루어지기 어렵게 됐다. 전임 정부를 적폐세력으로 규정하고 청산에 나선 윤석열 정부에 대해 문 전 대통령도 가만히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그가 양산 사전 인근에 북카페를 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여당은 “잊히고 싶다고 해 놓고 정치 전면에 나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기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하고 일어났던 일련의 일들이 데자뷔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 기분 좋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고, 열차 편으로 고향 봉하마을로 향한 노무현 대통령은 환영나온 사람들을 향해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 홀가분하다는 의미로 이 말을 했다. 그 후 봉하마을에 자리잡은 그는 손주를 자전거에 태우고 마을을 다니는 모습 등을 통해 평범한 일상을 국민에게 보여줬다. 그는 퇴임 후 대부분 서울에 머물렀던 역대 대통령과 달리 퇴임과 동시에 바로 귀향한 첫 대통령이기도 했다.

그러나 귀향한 대통령을 향한 후임 정부의 공격은 가혹했다.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대통령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논두렁에 고가의 시계를 버렸다는 것으로 상징되는 전임 대통령 망신주기가 극에 달했다. 결국 검찰에 소환됐다. 언론은 봉하마을부터 검찰청까지 이동하는 현장을 생중계했다. 국민들도 뭔가 부정한 일이 벌어졌다고 믿기 시작했다. 그를 옹호하면 공범자 취급을 받았다. 그리고 비극이 일어났다. 뒤늦게 국민들은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노 대통령과 함께 은퇴했던 문재인 전 비서실장이 다시 정치에 나서는 계기가 됐다.
 

▲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인 2019년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의 전속 사진사였던 장철영 씨가 청와대 재임과 퇴임 시 찍었던 대통령의 일상생활을 비롯한 미공개 사진 40여 점을 연합뉴스에 공개했다. 사진은 2007년 5.18 기념식을 마친 다음 날 무등산 등산 도중 휴식을 취하며 당시 문재인 비서실장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연합뉴스)
▲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인 2019년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의 전속 사진사였던 장철영 씨가 청와대 재임과 퇴임 시 찍었던 대통령의 일상생활을 비롯한 미공개 사진 40여 점을 연합뉴스에 공개했다. 사진은 2007년 5.18 기념식을 마친 다음 날 무등산 등산 도중 휴식을 취하며 당시 문재인 비서실장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도 퇴임과 동시에 양산으로 귀향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달리 문재인 대통령 관저에는 보수 유튜버들이 대거 몰려가 소란을 일으키는 것이 달랐다. 이후 벌어지는 전임 정부에 대한 전면 부정은 똑같이 닮았다. 문 전 대통령이 잊혀진 삶을 살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여권에서 주장하는 것 처럼 쥐 죽은 듯, 죄인으로 속죄하며 살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정치에 개입하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현 정부가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사람에 따라 평가가 다르겠지만, 과도 있고 공도 있을 것이다. 독자 중에는 정권교체는 책임을 물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나타난 민심은 정확히 반반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싶다. 그럼에도 0.73%포인트의 지지를 더 받아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고, 국정을 담당하라는 국민적 명령은 유효하다. 국민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국민도 윤석열 정부의 정책을 지켜보면서 지지하거나 때로는 반대할 것이다. 정치권이 유발한 측면이 많지만, 윤 대통령은 무엇보다 극단으로 갈라진 민심을 통합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전임 정부의 모든 것이 부정되고, 나아가 청산해야 할 적폐 집단으로 만들어 버리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대통령으로서 추진했던 모든 것을 부정당하면 누군들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촛불혁명으로 박근혜 정권을 퇴출시키고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것도 국민이었다. 전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것이다. ‘잊혀진 삶을 살고 싶다’는 말은 어쩌면 진영 간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민심이 아니라, 협치하고 통합하는 세상이 됐으면 하는 희망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5일(현지시간) 아부다비 파병중인 아크부대를 방문, 한 부사관 가족과 영상통화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5일(현지시간) 아부다비 파병중인 아크부대를 방문, 한 부사관 가족과 영상통화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잊혀진 삶이란 무엇인가.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죽은 듯이 살겠다는 것은 아니다. 죄인으로서 속죄하면서 살겠다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런데 여당은 이를 강요하고 있다. 굴종의 삶을 강요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문 전 대통령을 다시 불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잊혀진 삶을 살겠다는 것은 죄인으로서 입다물고 칩거하는 것이 아니라, 공은 공대로 이어받고, 과는 과대로 바로잡는 차기 정부의 합리적 국정운영이 전제될 때 가능한 일이다. 이미 야당의 대표를 피의자로 범죄자 낙인을 찍고 협치는커녕 대화도 거절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전직 대통령에게 죽은 듯이 있으라는 강요는 정치퇴행이 아닐 수 없다.

문 전 대통령의 양산 북카페를 열겠다는 것을 두고 여권 인사들은 “억지로 잊혀지지 않은 삶을 살겠다”는 비아냥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검찰권을 통한 전 정권 죽이기에 문 전 대통령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게 된 것도 사실이다. 결국 문재인을 다시 불러낸 것은, 그가 돌아올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고, 국민의힘인 셈이다.

천남수 강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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