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구입하는데 어려움 없도록” 56년 꿋꿋하게 운영
창업 이후 ‘황금알 낳는 거위’ 번창
1967년 고 심재교씨 교단 떠나 개점
1988년부터 심종원 현 대표 합류
인근 지역까지 참고서·전집 판매
밤이면 돈 세는 일이 힘들 정도 호황
인터넷 구매 활성화 등으로 쇠락
천곡동에서 수험서 등 판매 전문화
학생들 원하는 교재 구해주기도
40~50년 전 단골의 감사인사 활력

▲ 1대 창업주 故 심재교씨가 운영하던 북평 송정동 강원은행 앞 천일서점의 1970년대 모습
▲ 1대 창업주 故 심재교씨가 운영하던 북평 송정동 강원은행 앞 천일서점의 1970년대 모습

56년 동안 한결같이 외길만 걸으며 2대를 이어온 책방이 있다. 바로 강원 동해시에서 가장 먼저 백년가게로 인증받은 천곡동 801-16에 위치한 ‘천일서점’.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오래도록 고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 받은 공식 인증 점포이다.

현재 2대 심종원(61) 대표의 부친 고(故) 심재교씨가 지난 1967년 송정동(당시 강원은행 길 건너편)에서 창업했다. 부부교사로 삼척·북평지역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던 중 30대 초반에 ‘학생들이 책 구입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을 안타까워 하며 교단을 떠나 서점계에 뛰어들었다.

동해시 천곡로 59에 위치한 천일서점 외부 전경.
동해시 천곡로 59에 위치한 천일서점 외부 전경.

1960년대말~1970년대 자가용이 많지 않았던 시절, ‘코티나’ 차량을 기사를 두고 운영할 정도로 서점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번창했다.

당시 삼척 북평·송정지역에는 초·중·고등학교와 강원도에서 제일 큰 기차역, 민간 비행장이 있었다. 주위에는 항구로 번성기를 누리던 묵호와 대기업 시멘트 공장이 삼화에 있어 인구가 4만명에 달 할 정도로 번화했다. 소설·시집·위인전·잡지 등 독서를 권장하던 사회적 분위기 속에 서점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1980년대 초 금전적으로 여유가 생기자 부친이 서울로 가 출판업에 진출하다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서점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대학에서 영문과를 졸업해 중등영어정교사 자격증을 따고 곧바로 내려온 심 대표는 1988년부터 가업을 이어받아 어머니와 함께 서점을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1970년대 당시 동해시에는 책방이 송정동 1곳밖에 없었기 때문에 묵호에서 철길을 따라, 천곡에서도 걸어서 책을 사러 왔다. 8평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매장이면서도 넓은 창고를 갖추고 독자들이 원하는 책을 많이 구비해 영업구역이 동해인 지금의 형태와는 달리 태백·정선·삼척·북평·묵호까지 참고서와 전집 도서 단행본을 판매했다.

서점과 붙어있는 단칸방에서 어머니와 삼형제가 같이 살았고, 당시 흔치 않았던 TV 드라마를 방에서 보다가 매장 문이 닫히는 소리가 ‘꽝’하고 나면 삼형제가 일제히 이불속에 들어가 ‘자는 척’을 했다. 어머니는 사과를 준다며 아이들을 깨워 마대 자루에 가득 담아온 꾸깃꾸깃한 지폐를 펴서 화폐단위별로 분류하게 했는데, 이 일이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돈을 쓸어담을 정도로 당시에는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었고, 서점이 많은 돈을 벌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동해시 개청과 함께 송정동에 해군이 들어오고 동해항이 개발되면서 주민들이 빠져나가고, 학교들이 천곡동 등으로 이전해 가는 등 서서히 쇠퇴해 가면서 서적을 구매하는 수요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더욱이 직원들이 독립해 나가 서점을 차리기 시작하면서 지역별로 나눠먹기가 되고, 매출도 그만큼 줄어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

이후 동해지역에 서점이 18개까지 늘어나자 북평고교 옆 효가동 등 여러 차례 가게를 옮겨다니며 노력했으나, 인터넷 구매까지 활성화 되면서 예전의 영화를 더이상 회복할 수 없었다.

마지막 심정으로 지금의 천곡동 자리로 가게를 옮겨 수험서·취업준비서·기술서적 등을 주로 취급하는 서점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학생들의 주문도서, 지역 도서관·학교 도서 납품 입찰에 참여하는 등의 변화된 경영으로 제2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심 대표는 학생들이 원하는 교재를 주문만 하면 어김없이 구해 줬는데 나중에 찾아와서 고마움을 전하는가 하면, 여기서 책을 보고 지금은 서울대를 졸업해 박사가 됐다며 찾아오는 학생들을 볼 때 보람을 느끼며 힘 닿는데까지 서점을 운영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다.

▲ 1대 창업주 부친 고 심재교씨의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2대 심종원(61) 대표.
▲ 1대 창업주 부친 고 심재교씨의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2대 심종원(61) 대표.

40~50년전 송정동에서 책을 구입했던 단골 분들이 할아버지가 된 후 찾아와서 ‘천일서점의 이름으로, 아들이 계속 지켜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할 때도 감사하고 뿌듯함을 느낀다. 이런 것이 모두 서점을 운영하는 동기부여가 되고 열정을 갖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열정만으로 서점을 운영하기엔 현실의 벽이 너무 높다. 인터넷 구입의 일반화와 대형서점의 지방 진출 등으로 동네서점의 설자리는 점점 사라져 이제 4곳만 남아있는데, 그나마도 대부분 문을 닫으려는 추세다. 종이책을 읽지 않는 시대가 도래한데다 책을 보려면 도서관에 가고, 사려면 인터넷에서 구입하다 보니 살아남아야할 이유가 점점 없어져 멀쩡한 서점 사장들도 나이가 들면 2세에게 물려주기보다 그냥 문을 닫는게 대세다.

2세가 없는 심 대표는 가업 승계는 할 수 없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서점을 계속 운영할 생각이다. 서점 경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40대 후반에 대학원에 진학해 정치학을 전공하고 힘겹게 졸업했을 정도로 책 사랑꾼의 진심이 묻어난다.

▲ 1970~1980년대 송정동에서 당시 판매하던 중등 교과서와 참고서가 현재 천곡동 매장에 전시된 모습.
▲ 1970~1980년대 송정동에서 당시 판매하던 중등 교과서와 참고서가 현재 천곡동 매장에 전시된 모습.

마침 2020년 백년가게에 선정되면서 신문·방송 등 언론과 인터넷·SNS·블로그 등에 홍보가 돼 많이 알려지고, 백년가게를 순례하는 이들도 있어 매출에 도움이 되고 있다. 또 2020년 행정안전부장관으로부터 모범소상공인 표창을 수상했고, 2021년 강원도로부터 ‘지역서점 인증서’를 받아 여러가지 지원을 받을 수 있어 다행이다.

현재 지역 서점가는 불경기이지만 그렇다고 모든게 다 부정적이진 않다. 예를들어 전자파가 나오고 단어를 금방 잊어버리는 ‘전자사전’ 보다 종이를 넘기면서 보면 기억이 오래간다는 사실 때문에 고객들이 ‘종이사전’을 다시 찾기 시작하기도 했다.

또 베스트셀러 등 품절로 인터넷에서 구매하기 어렵거나 배송이 오래 걸리는 도서에 대해 매장에서 주문하면 도매상과 직접 연결해 빠른시간내에 책을 구입해 주는 서비스도 지역 서점의 장점이다. 심 대표는 “서점 건물의 한 층을 지역 어머니회·독서회 등 문화단체들의 발표회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꾸며서 그동안 받은 사랑을 지역사회에 조금이나마 돌려드리는 일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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