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도 누룩도 중요하지만 60년 술맛 비결은 3대째 이어온 장인정신
1965년 조부 심봉태씨 사업 시작 후
아버지 이어 3대 심재헌씨 현재 운영
찰옥수수·당귀·더덕…세대별 막걸리 개발
부친과 좋은물 찾아 산 오르며 후계자 수업
제품 명품화로 코로나19 불구 매출 유지
기술력 입증 지난해 백년소공인 선정

2010년 방영된 10년도 더 된 드라마 문근영 주연의 ‘신데렐라 언니’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20대의 한창을 소주와 맥주, 소맥으로 달리던 기자에게 막걸리의 매력을 알게 해준 드라마다. 1965년부터 60년 가까이 한 자리에서 막걸리를 만들며 판매하고 있는 진부양조장을 방문할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이 누룩 익는 소리에 자신의 상처를 치유 받는 드라마 속 문근영의 모습이었다. 누룩 익는 술독을 가만히 안고 있는 모습에, 막걸리를 마시면 20대 청춘의 갖은 생채기들이 치유될 것만 같았다. 물론, 숙취만 더했지만.

▲ 진부 양조장
▲ 진부 양조장

술독이 쌓여 있는 넓은 마당을 기대하고 찾아간 진부양조장은 3대째 이어지며 이미 현대식 설비를 갖춰 그런 풍경은 볼 수 없었다. 당시의 모습이 담긴 사진도 남아있지 않고, 1~2대까지는 술독으로 누룩을 발효시켰다는 심재헌(39) 대표의 말로 만족해야 했다. 진부양조장은 심 대표의 할아버지인 고(故) 심봉태(1909년생) 씨가 1965년 50대의 나이에 사업을 시작했다. 1980년에 초대 대표인 심봉태 씨가 돌아가시면서 아버지인 심달섭(73)씨가 양조장을 물려받았다. 심재헌 대표가 태어나기 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1대 진부양조장의 이야기가 기억에 많이 없다고 했다.

심 대표는 대학 졸업 후 취업 준비를 하다가 양조장을 혼자 운영하기 버거워 하시는 아버지를 도와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2015년 31살의 나이에 가업에 뛰어들었다. 다음해인 2016년 ‘이 여자가 아니면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도 했다.

▲ 심재헌(39) 대표는 2015년 31살의 나이에 3대째 가업을 물려받아 진부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다.
▲ 심재헌(39) 대표는 2015년 31살의 나이에 3대째 가업을 물려받아 진부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직원 2명과 아버지와 함께 양조장을 운영했다. 현재는 심 대표와 아내가 함께 운영하고, 심달섭 씨가 도와주고 있다. 2015년 심 대표가 양조장을 맡은 이후 쭉 매출 상승세를 이어왔다. 코로나 시기에도 꾸준히 매출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명품화 된 막걸리를 출시해 새로운 거래처를 뚫었기 때문이다. 한 병당 1000~2000원에 판매하던 기존 제품의 물량은 줄었지만, 명품화 해 판매한 ‘발왕산 막걸리’라는 제품이 있어 크게 타격을 입지 않아 지금까지도 가게를 이어올 수 있었다. 2020~2021년 판매했고, 현재는 출시되지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 지역농산물을 활용해 지역브랜드로 명품화한 막걸리를 계속 개발해 양조장의 발전을 도모할 계획이다. 진부양조장은 대를 이어 막걸리를 개발해 온 역사가 있다. 초대 오대산 찰옥수수 막걸리를 시작으로 2대인 심달섭 대표가 2011년 국내 최초로 당귀 막걸리를 개발했고, 3대 심재헌 현 대표가 2016년 더덕 막걸리를 출시했다. 지난해에는 백년소공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심재헌 대표는 앞으로도 꾸준히 막걸리를 연구하고, 개발할 계획이다. 재료를 선별하고, 비율을 배합해 발효와 숙성정도 연구 등 2~3개월에 걸쳐 개발된 각 막걸리는 전국 각지에 팔려나가고 있다. 보통은 거래처를 통해 대량 판매하지만 워낙 오래된 터라 진부양조장의 막걸리 맛을 기억하는 개인 단골 손님들의 소량 택배주문이나 직접 사러 오는 경우도 많다. 어제도 강릉에서 막걸리 한 박스를 사기 위해 직접 찾아오기도 하고, 부산에서 속초 등 동해바다로 여행을 왔다가 진부양조장의 막걸리를 사기 위해 일부러 이곳을 들렀다 가는 단골도 있다. 막걸리를 양조장에서 갓 사다 마셨을 때 맛을 아는 애주가들이다.

▲ 진부양조장은 초대 찰옥수수 막걸리를 시작으로 2대에 당귀 막걸리를 개발, 3대인 현 대표가 더덕 막걸리를 출시했다.
▲ 진부양조장은 초대 찰옥수수 막걸리를 시작으로 2대에 당귀 막걸리를 개발, 3대인 현 대표가 더덕 막걸리를 출시했다.

하지만 정작 아버지도, 본인도 술은 잘 못 마신다고 한다. 양조장 아들로서 술과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를 기대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착한 아들로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일을 도왔던 기억뿐이다. 막걸리를 만들 때 누룩도 중요하지만 물의 맛이 중요하다는 아버지의 장인정신에 따라 좋은 물을 구하러 함께 산을 다녔단다. 좋은 물을 발견하면 통에 담아 수 십 통을 아버지와 함께 날랐다. 그런 고생들이 지금의 진부양조장을 있게 했다. 또 어렸을 때는 지금처럼 병에 막걸리를 담지 않고 ‘퉁자’라고 둥그런 통에 막걸리를 담아 판매했는데, 그 ‘퉁자’ 배달도 함께 다녔다. 어렸을 때부터 후계자 수업을 받아 온 셈이다.

막걸리만이 갖는 매력을 묻자, 다른 술에 비해 도수가 좀 낮고, 다양한 맛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점을 들었다. 워낙에 막걸리 종류가 다양한데다, 기본 막걸리에 자신이 좋아하는 맛을 섞어먹을 수도 있어 가볍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3대가 한 지역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으니 지역은 꽉 잡고 있겠다는 기자의 너스레에 심 대표는 “그건 아니고, 그냥 많이들 알아주시죠”라고 답했다. 조용조용 말을 이어간 심 대표는 차분하고, 선한 성격답게 가게운영 역시 큰 위기도, 호황도 없이 그저 꾸준하게 이어올 뿐이라고 했다.

▲ 초대 대표인 할아버지 고 심봉태(1909년생) 씨와 할머니 고 김의노(1919년생) 씨
▲ 초대 대표인 할아버지 고 심봉태(1909년생) 씨와 할머니 고 김의노(1919년생) 씨

인터뷰 내내 차분한 모습을 보였던 심 대표는 자녀 얘기를 묻자 처음으로 눈이 반짝였다. 2016년 결혼해 7살, 5살 된 아들 둘이 있는데 큰애는 똑똑하고, 백만단위 수까지도 셀 정도로 숫자를 좋아한단다. 둘째는 예쁜 짓을 많이 해 마냥 귀엽다고. 두 아들 중에 누구에게 가업을 물려주고 싶냐는 ‘우문’에,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응원하겠다는 ‘현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아들이 가업을 잇겠다고 한다면 100억원 매출을 만들어서 지금보다 훨씬 발전된 양조장을 물려주고 싶다고 했다. 내내 적은 말수로 조용하게 인터뷰를 이어가던 심 대표가 아들, 가업승계 얘기가 나오자 갑자기 열정 가득한 포부를 드러냈다.

평창 진부에서 60여년. 청정지역에서 전통의 맛과 노하우를 전수해 온 진부양조장. 대형 주류업체가 아닌 지역에 자리해 지역농산물과 물을 기반으로 막걸리를 생산해내는, 그 자체로 지역을 상징하는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진부양조장의 4대 대표 탄생을 기대해본다.유승현 yoosh@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