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하(강릉) 시인 첫 동시집 출간
시집 ‘저녁의 마음가짐’도 나란히
동물 등 소재로 생사의 치열함 표현

“봄날 땅을 파다/ 개구리를 찍었다// 내가 찍힌 듯/ 마음이 망했다 // 내가 할 수 있는게 없어서 /다시 흙으로 덮었다”(시 ‘봄날’ 전문)

▲ 박용하 시인이 직접 촬영한 개구리 사진.동시 ‘봄날’과 함께 실렸다.
▲ 박용하 시인이 직접 촬영한 개구리 사진.동시 ‘봄날’과 함께 실렸다.

이 시를 읽고 옆 페이지로 시선을 돌리면 멈춘 자전거 바퀴살에 매달려 있는 청개구리와 눈을 마주친다.

강릉 출신 박용하 시인의 첫 동시집 ‘여기서부터 있는 아름다움’의 일부다. 동시집에는 시인이 직접 찍은 사진들이 함께 실렸다. 휴대폰 없이 살아온 그는 58세가 되던 2020년에서야 후배에게 택배로 휴대폰을 하나 선물 받았고, 난생처음 사진이란 걸 찍기 시작했다고 한다.

동시집이지만 독자층은 어른이 더 알맞다. “내 속에 남아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걸듯이, 언젠가 나 같은 어른들에게 말 거는 동시를 써보고 싶었다”는 시인의 말에서 이미 동시집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수록 시들은 어린 시절의 아득한 기억 속 어느 순간으로 데려다 놓았다가, 바로 다음 행에서 독자가 처해 있는 현실을 목도하게 만든다.

일상 속 동물의 모습에 비춘 철학적 시선이 인상깊다. 2부 ‘개 있는 인생’에는 백구 ‘동동이’를 비롯한 동물 사진들이 작품마다 실렸다. 개는 시인을 ‘비무장 동물’로 만들었고, 이윽고 “나무가 나를 기르듯이 개가 나를 기르고 있다”(시 ‘강아지의 힘’ 중 )고 노래하게 됐다. “돼지와 한 방에서 지내는 사람도 있지/그건 차라리 시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시 ‘동물의 힘’ 중)”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 동시집은 델리스파이스의 3집을 떠올리게 한다. 이 앨범 수록곡 ‘고양이와 새에 관한 진실’, ‘누가 울새를 죽였나’를 들으며 읽어보면 감상효과가 배가되겠다.

박 시인은 시집 ‘저녁의 마음가짐’도 함께 펴냈다. 동시집과 완전히 다른 성격의 시들로 묶여 있는 듯 하지만 관통하는 무언가가 분명히 느껴진다. 특히 ‘입김’이라는 소재가 그렇다. 동시집 3부에서 ‘누가 입김을 밟고 갔나요’라는 타이틀로 그리움의 심상을 한껏 높인 시인은 시집 ‘저녁의 마음가짐’ 뒤에는 “어느 날 나는 여기 없을 것이다. 네 사라지는 입김처럼”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자신의 산문 ‘파도’를 실었다.

시집은 죽음, 외면, 무대책 등의 삶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으면서도 늘 뒤를 돌아보고, 곱씹는 중년의 치열한 삶을 생각하게 한다. 시인에게 치열함이란 죽어가는 사람의 눈으로 살아 있는 나와 세상을 보는 것이다.

산문에도 시, 언어, 문학에 대한 깊은 애정이 배어있다. “낱말 하나를 바꾸었을 뿐인데 문장의 색깔과 숨소리가 바뀌고, (중략) 세계가 아예 새롭게 태어나는 느낌을 받는다면 과장일까.”

김여진 beatle@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