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수 춘천시의원

 # 풍경1
 2007년 12월 A시 의회가 조용하다. 예년 같으면 차기년도 당초예산안 심의로 분주해야할 의회가 의결정족수 채우기에 바쁘다. 의원들이 시의회 의사당 대신 거리의 선거유세에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차기 공천을 의식해 정당에 몸을 담은 기초의원들이 한가하게(?) 시의회에서 예산안을 다룰 수 없는 형편이 된 것이다.
 # 풍경2
 2008년 4월 총선에서 B 의원은 여유가 넘친다. 지난 총선에서의 고전이나 의정활동의 미흡함도 염려할 것이 없다. 자기가 공천한 기초의원들이 부인까지 동원하여 골목골목 누비며 알아서 선거운동을 해주고 있으니 이보다 기분 좋은 일이 어디 있는가. 2005년 당시 그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한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는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떠올리며 B의원은 다시 한 번 흐뭇해하고 있다.
 
 가상 풍경이 아니다. 앞으로 2∼3년내에 우리가 처한 지방정치 현장에서 쉽게 경험하게 될 모습이다. 지난 6월 말 지방자치를 유린하고 생활정치를 고사시키는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를 골자로 하는 선거법을 개정했다. 설득력 없는 논리로 후안무치하게 처리한 선거법은 벌써부터 주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고 역시나 한심스런 정당의 생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당마다 공천을 미끼로 강제적으로 당원을 모집하는 과정을 보자. 이게 소위 '지방의회 수준을 끌어올리겠다','책임정치를 하겠다'는 공당들이 할 짓인가. 정당이 표방하고 있는 이념과 강령에 대한 동의는 정당가입의 조건도 아니다. 6개월만 당원이 되어달라는 부탁에, 당비를 대납해 주겠다는 조건으로,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저런 사람의 부탁으로 인정상 이당저당 가릴 것 없이 당에 들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애초에 우리 정당사에는 자발적 당원이 존재하지 않았다. 동원되는 당원만 있을 뿐이다. 당원에 의한 정당이라면 우리가 숱하게 보아온 대로 정치인의 이합집산에 따라 정당을 세우고 허물기를 밥먹듯이 하는 정치현상은 없었을 것이다. 선거구획정과 관련한 각 당의 태도는 점입가경이다. 서울시나 부산시의 2인 선거구도 그렇고 강원도에서 벌어지는 논쟁도 오십보 백보다. 모두 각당의 이해득실에 따른 저울질이다. 원칙을 아무리 강조해도 해법은 없다. 그 논의의 중심에 주민은 없기 때문이다. 오직 당리당략만 있을 뿐이다.
 지방자치는 정당정치를 구현하기 위한 제도적장치가 아니다. 지방자치는 지역 주민들의 생활세계요구가 지역의 정책과 예산에 투영되도록 하는 것이며 지역의 모든 생활 질서를 주민이 새롭게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일련의 지역의 정치적 요구와 상황에 대하여 주민들을 대신하여 활동하는 이들이 기초의원이고 기초의회의 역할이다.
 이렇게 주민을 위해 일을 해야 할 지방의원들이, 이미 나타나고 있듯이 정당에(사실은 해당지역 국회의원 또는 정당책임자) 줄서기를 우선한다면 지방자치는 절망적이다.
 지역주민의 의사에 반함은 물론 전국기초의원들의 의원직 총사퇴라는 초유의 사태를 불러온 국회의 선거법 개악은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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