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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과 양양의 경계지점인 강릉시 주문진읍 향호리에 위치한 향호는 폐수와 농약 등의 유입으로 바다어종과 민물어종이 멸종 했다. 강릉/서 영
 환경에 대한 무관심이 반 만년 역사의 석호를 방치하면서 자연의 보고(寶庫)를 썩어가는 죽음의 호수로 만들고 있다. 특히 강릉 '풍호'는 인근 발전소에서 발생한 무연탄재를 수십 년간 매립하면서 주민들의 생계수단에서 이젠 접근도 불가능한 기억속의 자연으로 변질됐다. 탁트인 자연 조건으로 관광객과 주민들로부터 낚시터와 관광지로 각광받던 '향호' 역시 방치되면서 주민들도 찾지 않는 죽음의 호수로 신음하고 있다.

향호 : 축산·농경 폐수 유입 물고기 집단폐사
풍호 : 영동화력발전소 연료 무연탄재 매립
순포개호 : 평균 수심 0.3m 늪지 전락 악취 진동

 ■ 아직은 보전가치 충분한 '향호'
 0.345㎢ 면적에 110만4000㎥의 물이 담수된 '향호'는 강릉과 양양의 경계지점인 강릉시 주문진읍 향호리에 위치하고 있다.
 국도 7호선을 경계로 동해안 백사장과 맞닿아 있는 향호는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지만, 물고기가 집단 폐사하는 등 오염이 가속화된 지 오래다.
 주민들에 따르면 지난 2005년 7월 호수 바닥에서 기포가 올라오면서 뱀장어 수 십마리가 죽은 채 호숫가로 밀려 나오기 시작해 며칠 사이 수 천마리의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다.
 향호로 유입되는 유일한 하천인 향천 상류에는 소 502마리·닭 1만8000여마리 등 축산시설과 논 0.766㎢, 밭 0.476㎢ 등 농경지에서 발생하는 폐수와 농약성분 등이 하천을 타고 호내로 유입되고 있다.
 또 과거에는 바다와 만나는 부분이 우기시에는 호내의 물량이 늘어나면서 향호에서 바다로, 평상시에는 바다에서 치는 파도의 힘으로 바다에서 호내로 물의 소통이 원활했지만 각종 개발로 인해 지금은 인위적으로 물길을 터주는 소위 '개터짐'을 만들어 줘야 하는 실정이다.
 수 십년간 오염물질은 계속 유입됐지만 정화 역할을 할 바다와의 소통은 막히면서 자연스럽게 호수가 죽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998년부터 2005년까지 향호의 평균 화학적 산소요구량(COD)은 6.4㎎/ℓ로 호수 수질기준 4등급 수준이다.
 강원발전연구원이 지난 2003년 12월 발표한 '강원도 자연석호의 보전 및 활용방안'에 따르면 향호의 부유물질농도(SS)는 1998년 10.7㎎/ℓ, 1999년 20.7㎎/ℓ, 2000년 49.9㎎/ℓ, 2001년 15.9㎎/ℓ로 4년 평균 SS농도가 24.3㎎/ℓ 수질기준 5등급에 속했다.
 특히 향호는 석호의 대표적 특징인 담수과 해수가 만나는 기수호의 특성을 보여주듯 10년 전까지만 해도 바다어종인 남정발이, 숭어, 황어는 물론 민물어종인 메기, 붕어, 잉어, 뱀장어 등 다양한 어종이 서식했지만 지금은 씨가 말랐다는 것이 주민들의 설명이다.
 또 호숫가의 흙은 녹물을 머금은 것처럼 시뻘겋게 변해 있어 오염의 심각성을 보여줬다.
 주민 황정일(55)씨는 "바닥에 들어가 보지 않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모두 뻘층으로 변했다고 보면 틀림없다"며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하루에 수 십명의 낚시꾼들이 고기를 잡던 호수가 지금은 물고기 자체가 자취를 감춘 상태로 무슨 원인인지 최근에는 지하수를 파도 녹물만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 주민들의 기억에서 아련해진 '풍호'
 강릉시 강동면 하시동 3리. 이젠 무성한 갈대와 소규모 저수지 형태로만 남아 있는 '풍호'의 주소지다.
 풍호는 인근에 지난 1968년 영동화력발전소가 착공해 1973년 12만5000㎾ 규모의 1호기와 1979년 20만㎾ 규모의 2호기가 준공되면서 발전연료로 사용하고 남은 무연탄재를 매립해 형태를 잃어 버렸다.
 강릉의 향토지인 '임영지'에 따르면 풍호는 호수 둘레가 4㎞, 면적은 30만평 정도였으며, 호수 중심에 연꽃이 만발해 다른 석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유산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73년부터 92년 전후까지 계속된 무연탄재의 매립으로 지금은 석호의 기능을 상실했다.
 풍호는 지역 주민들의 생활터전이기도 했다.
 행정구역상은 하시동 3리지만 이 곳에는 '풍호마을'이라는 지명이 있다. 바로 풍호를 터전으로 주민들이 생활하던 마을이다.
 호내에 서식하던 잉어, 붕어, 가물치, 민물새우, 뱀장어 등 다양한 어종은 매립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풍호에 살고 있던 14가구 주민들의 생계수단이었다.
 주민 석한성(84)씨는 "매립장으로 사용하기 전에는 주민들이 고기를 잡아서 생계를 꾸려 가던 곳이었다"며 "잉어, 붕어, 가물치 등 물고기 양도 많고 종류도 많았다"고 회고했다.
 김종순(70)씨도 "과거 풍호 인근에 풀도 많아서 주민들 대부분이 1∼2마리의 소를 키우면서 풍호에서 풀을 베 먹이로 줬다"며 "매립 전에는 바다와도 소통해서 물고기가 많아 외지인들이 낚시도 많이 하던 곳"이라고 말했다.
 발전소 관계자는 "매립 당시에는 환경개념이 없었을 것"이라며 "매립장 토지 면적은 60만㎡로 매립이 끝난 이후의 재는 시멘트의 원료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풍호는 최근 강릉시와 한국남동발전(주)이 골프장 조성을 위한 토지 임대협약을 체결해 골프장 부지로 사용키로 하면서 남은 자취마저 개발의 압력속에 사라지게 됐다.
 한편 2006년 강릉시 통계연보에 따르면 풍호가 위치한 강동면 하시동 3리에는 108가구에 모두 274명의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다.
 ■ 썩어가는 '순포개호'
 시커먼 물, 심한 악취, 곳곳에서 발견되는 가스통과 배터리 등 생활쓰레기. 강릉시 사천면 '순포개호'의 현주소다.
 순포개호는 호수 가장자리는 물론 중심부분까지 호수를 채우고 있던 물은 사리지고 갈대만 무성한 채 방치된 지 오래다.
 호수 바닥은 죽은 갈대로 몇 년이 쌓였는 지 모를 정도로 늪지처럼 변해버렸고, 평균 수심이 0.3m밖에 되지 않는 바닥을 들추면 시커먼 물과 함께 악취가 진동하는 실정이다.
 강원대 삼척캠퍼스 허우명 교수에 따르면 지난 2006년 수질조사에서 순포개호의 COD는 9.3㎎/ℓ로 호수 수질기준 5등급에 속해 오염이 심각함을 보여줬다.
 그러나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연구원이 지난 2004년 발표한 전국 내륙습지 조사결과에 따르면 순포개호는 규모가 작지만 전형적인 석호의 특징을 갖추고 있어 석호와 관련된 교육현장으로서의 보전 가치가 큰 것으로 분류됐던 곳이다.
 순포개호는 10년 전만해도 농한기에는 물을 담수했다, 농번기에는 물을 빼내고 농사를 짓던 주민들의 생활터전이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과거 순포개호는 매년 봄 주민들이 합동으로 바다와 호수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개터짐'을 만들어 줬지만, 10년 전부터 개터짐이 중단되면서 오염이 가속화됐다.
 강릉시가 순포개호 주변 일대를 송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일반인들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지만 오염을 막는데는 역부족이다.
 주민 최선집(74·여)씨는 "10년 전만 해도 봄이 되면 주민들이 '개타러가자(개터짐 현상을 만들어 주는 것)'며 함께 바다와 물 길을 터줬었다"며 "지금은 순포개호 바로 옆의 농지는 썩은 냄새를 맡으면서 농사를 짓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홍서표 mindeulle@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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