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일 컬렉션] ⑬ 1954년 ‘신천지’ 춘천 르포기사
건축물·공지천 등 6개면 걸쳐 특집으로 소개
군사도시 모습 강렬… 잡지 첫 르포기사 의미

▲ 1954년 신천지 9월호 표지에 소개된 춘천에 관한 르포 기사. ‘춘천 소양강의 옛모습’이라는 제목의 사진은 현재 소양1교로 옆에는 봉의산으로 옮겨진 ‘소양정’이 원래 자리에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한국전쟁 직후의 춘천의 생생한 모습을 기록한 잡지 기사가 공개됐다.

박민일(71) 전 강원대 교수가 최근 입수, 공개한 잡지 ‘신천지(新天地) 1954년 9월호(통권68호)’에는 르포 형태의 ‘각 도시 풍토기(各都市風土記)’ 시리즈로 ‘회고(懷古·옛것을 품다)의 도시 춘천’이라는 제목으로 6면에 걸쳐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한국전쟁 이후에 춘천에 대한 최초의 잡지 르포 기사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박 전 교수는 “신문기사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확인된 잡지 기사로는 한국전쟁 직후 춘천의 모습을 기록한 최초의 르포 기사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기사에서는 지난 1953년 수복된 이후의 춘천을 국군과 미군, 비행장, 군용 트럭으로 붐비는 ‘군도(軍都)’로 묘사하고 있다.

“춘천 시내와 근교에는 비행장을 비롯하여 수없이 많은 국군과, 미군 시설이 널려있기 때문에 거리가 번잡할 것은 말할 것도 없다.(74면)”

이와 함께 춘천의 모든 건축물을 ‘하꼬방(판잣집)’으로 표현해 전후 폐허가 된 도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원래 거대한 건물은 없었다지만 좁은 골짜기에 끼어있던 조그만 초가집을 약간 남기고. 시가 전부가 문자 그대로 폐허가 된 이 자리에 관공서나 금융기관이나 점포나 주택이나 할 것 없이 모조리 하꼬방이다.(74면)”

현재는 아파트가 밀집하고 유명음식점들이 즐비한 석사동 스무숲길 ‘안마산(鞍馬山)’에 있었던 사찰 ‘안마사(鞍馬寺)’는 부녀자들이 ‘안아사’라는 애칭을 붙여 여성 전용 놀이터였다는 등 지명에 관한 내용도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

공원으로 변한 ‘공지천(孔芝川)’ 다리 건너편은 ‘공지원(孔芝院)’으로 불렸으며 미꾸라지와 뱀이 많기로 유명했다.

‘후평리(후평동)’는 뒷마당이란 뜻의 ‘뒤뚜루(뒤뜰)’로 표기하고, ‘우두리(우두동)’와 함께 물과 토질이 좋은 이름난 농토였다.

기사는 ‘춘천이 호수와 산으로 둘러싸여 근교 놀이터가 많은 곳이지만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는 시민들에겐 가슴 속에만 아련하게 먼 회상으로 그런 놀이터에서 놀던 기쁨을 되살려 나가고 있을 뿐’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름에는 천렵, 겨울에는 잉어낚시와 스케이트가 성행했다’고 기록해 전쟁 직후임에도 불구, 춘천시민들이 생활의 여유를 잃지 않으면서 아픔을 치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소양교는 당시 군 전용도로로 시민들이 지나다닐 수 없었으나 그늘에서는 피서를 즐겼다는 내용도 보였다.

▲ 1954년 신천지 9월호 표지. 왼쪽 별표시 밑으로 ‘각도시 풍토기 춘천·부산편’이라는 표제가 선명하다.
전쟁 직후 도시를 치밀한 묘사로 생생하게 표현한 기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춘천의 변화상과 역사를 알 수 있는 소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박 교수는 “젊은 세대들에게 전쟁으로 당시 춘천이 얼마나 초토화 되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며 “춘천이 당시 군사도시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던 것을 보여주는 한편의 서사시로, 춘천사 연구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잡지 ‘신천지’는 서울신문사에서 발행한 것으로 해방 직후인 1947년 1월 15일 창간돼 1954년 10월호(통권 69호)를 끝으로 폐간됐다. 크기는 국판이며 분량은 200면 내외다. 창간호에 좌익 작가인 임화의 ‘박헌영론’이 실리는 등 전체 지면 가운데 절반을 논문에 할애했다.

소설로는 김동인의 ‘분토’, 황순원의 ‘술 이야기’, 손소희의 ‘흉몽’, 한무숙의 ‘허무러진 환상’, 염상섭의 ‘두 파산’ 등이 실리는 등 문학사료로도 가치가 크다.

신화준 hwajune@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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