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공예술, 주민들과 소통
경제·미학 요소보다 생활·문화적 관점 접근
‘콩’·‘피카소’ 조형물 시카고 대표 작품 자랑
늦여름의 기세가 완전히 꺾이지 않은 10월 말 시카고 시티. 도시 중심부 미시건 애비뉴에 위치한 밀레니엄 파크의 한 구조물에 시민과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다양한 표정과 포즈로 그 구조물을 대하고 있었다. 팔을 걷어 붙이고 포즈를 취하는 사람, 다시 반대쪽 주변 풍경을 살펴보는 사람, 그곳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촬영하는 사람…. 모두 그 앞에서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거대한 콩처럼 생긴 이 구조물은 세계적 미술가 애니쉬 카푸어가 지난 2004년 탄생시킨 설치작품 ‘클라우드 게이트’다. 전체가 스테인리스 재질로 만들어져 마치 거울처럼 주변의 도시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원래 작품명인 ‘클라우드 게이트’보다 시민들에게는 ‘콩(Bean)’ 또는 ‘시카고의 물방울’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사랑받고 있다. 설치 초기부터 미학적 가치를 인정받았던 이 작품은, 그러나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가치가 떨어진다. 작품의 매력인 반짝이는 표면을 한 번 닦는 데 5만 달러가 소요될 만큼 유지·보수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 시카고 시는 시민들의 ‘행복한 생활’을 위해 기꺼이 비용을 감수하고 있다.
유명작가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시민들에게 사랑받지 못한 작품도 있다.
리차드 데일리 시민센터 플라자 앞 광장을 지키고 있는 파블로 피카소의 ‘무제’이다. 지난 1967년 피카소의 작품이 첫선을 보이자 시민들 사이에서는 비난 여론이 거셌다. 시민들은 제목도 없고 무엇을 표현했는지 알 수 없는 피카소의 추상적인 작품세계를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난 여론은 오히려 더 많은 시민들의 주목을 받으며 더 많은 관심을 증폭시켰다.
피카소의 작품을 보기 위해 더 많은 시민들이 몰렸으며 작품이 위치한 ‘워싱턴 스트리트’는 ‘피카소의 거리’로 불리며 현재는 시민들의 축제의 장소로 변신하기에 이른다. 피카소의 작품은 초창기 미학적인 측면보다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일상 속으로 파고든 경우다. 콩과 피카소는 경제·미학 요소보다는 시민들과의 ‘소통’으로 인해 ‘시카고 퍼블릭 아트 가이드’의 표지와 첫번째를 장식하는 시카고 공공예술 대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시카고 도심 속 예술품들은 이처럼 시민들의 친구로 재탄생하며 일상 속에서 함께 호흡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공공예술 작업을 진행할 때 기획자들이 항상 마주치는 고민이 있다. 바로 경제적 논리와 미학적 측면의 조화다. 특히 중앙정부가 아닌 지자체의 경우는 문화·예술 사업을 통해 지역경기 활성화를 목표로 삼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경제적 개발논리로만 치우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예술·문화 사업의 대다수는 이른바 ‘축제’에 몰두하면서 각 지역 문화의 다양성보다는 지자체간 경쟁구도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예술의 공공성이란 경제·미학적인 면보다 시민들을 위한 생활·문화적인 관점인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돼야 함을 시카고를 대표하는 공공예술작품들은 말해주고 있다. 시카고/신화준 hwajune@kado.net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