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오세용~ 회장님!”

   
“나 간다. 수고들 해.”

아침부터 자리 턱 하니 차지하고 앉아있던 회장님이 나갈 기미를 보이자 다들 얼굴에 화색이 돈다. 특히 미스 신의 얼굴은 복숭아처럼 불그스레 홍조까지 띤다.

“안녕히 가세용~ 회장님!”

콧소리까지 섞어가면서 문 앞까지 배웅하는 미스 신…

“역시 미스 신은 우리 회사 꽃이야. 이래서 여자가 있어야 한다니까.”

미스 신의 애교에 기분 좋아진 회장, 칭찬 한 마디 남기고 나가자마자 사무실 분위기는 급변한다.

온라인 바둑 두다가 꾸벅꾸벅 조는 사장님, 신문 보다가 대놓고 엎어져 자는 부장님, 모니터 앞에서 멍 때리고 있는 재수까지… 눈에 불을 켜고 앉아있는 것은 미스 신밖에 없다.

아까부터 달력을 노려보고 있는 미스 신…

매년 새해 계획 첫 번째가 다이어트라는 것은 대외용이고, 속으로는 ‘올 안에 시집가고 말거야.’였던 미스 신이다.

그러나 올해도 벌써 달력이 반이나 뜯겨 나갔건만, 남자친구는 커녕 소개팅 한번 못하고 있다. 빨리 시집 간 친구는 벌써 학부형이 되었는데, 우리의 미스 신 언제나 웨딩드레스를 입어볼지…

‘이렇게 좌절할 때가 아니야. 아직도 6개월이나 남았잖아? 이럴 때일수록 미모를 가꿔서 남자를 잡아야 해. 고럼, 긍정 마인드가 최고지.’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줄칼, 매니큐어 등 네일아트 도구를 꺼내는 미스 신… 정성껏 매니큐어를 바르는데 메신저 대화창이 열린다. 고향 친구 현숙이다.

“춘자야! 뭐해?”

“내가 이름 부르지 말랬지!”

안 그래도 막 바른 매니큐어가 신경 쓰여 자판 치기 힘든데,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이름을 부른다.

“기집애, 까칠하기는…”

“바빠! 용건만 말해.”

“너 영철오빠 생각나?”

“목장 집 아들? 키 크고 공부 잘 하던…”

오호라~. 제비가 박씨 물어오듯 현숙이가 뭔가 물어오긴 물어온 거 같은데, 그렇다고 이럴 때 저자세로 나가면 상대방이 더 기가 사는 법.

“그런데?”

“오빠가 다음 주에 고향 오는데, 너 보고 싶댄다.”

‘이런 행운이! 드디어 여름이 가기 전에 내게도 썸씽이 일어난단 말인가?’

영철오빠가 누구인가? 고향에서 가장 큰 목장을 하던 부잣집 아들로, 키 크지 얼굴 잘 생겼지 거기다 공부까지 잘 해서 수재로 불리던 사람이 아닌가? 유학 가서 MBA 과정 끝내고 벤처 기업에 다닌다던가? 이런 일등 신랑감이 미스 신을 보고 싶다는데, 이 어찌 경사가 아닐쏘냐.

그런데 문제는 늘어난 살들이다.

‘오빠가 날 보고 실망하면 어쩌지?’

갑자기 머리속이 초울트라 슈퍼 컴퓨터급으로 돌아간다. 우선 급선무는 백과사전 두 권 두께의 뱃살을 빼는 건데, 그게 만만치가 않다.

‘일주일동안 허리를 최소한 2인치는 빼야하는데, 1인치에 4kg이니까, 몸무게 8Kg을 빼려면 단식+다이어트 약+숙변제거제+하루 2시간 걷기’

머리를 절래절래 흔드는 미스 신.

‘그래봤자 3Kg밖에 못 뺄텐데, 그럼 5kg을 더 빼려면 출근 전후 1시간씩 헬스+30분 사우나 하면 될까? 헬스 한 달에 9만원이면 다음 달 월세하고 카드값 갚고, 현금서비스 다 받아도 오버인데…’

이 모든 걸 2초 안에 처리하는 미스 신의 머리에는 쥐가 날 지경이다. 드디어 용량초과로 폭발하고 마는 미스 신, 매니큐어가 아직 마르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까먹고 머리채를 쥐어뜯는다.

“아악!”

사무실 사람들은 그런 미스 신의 태도에 이미 익숙한 듯 눈 하나 깜짝 않는다.

“노처녀 히스테리야. 미스 신 빨리 시집을 보내야 할텐데…”

“부장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노처녀는 누가 노처녀라는 거예요? 32살이면 여자 나이 황금기고요, 저는 못 간 게 아니라 안 가고 있는 골드미스라고요.”

말로 누가 미스 신을 당하랴. 다들 열심히 일하는 척 딴청이다.

“재수씨, 이번 신제품 개발 어떻게 됐다고 했지?”

이렇게 또 오후의 나른함을 쫓아내고 사무실 분위기를 일거에 쇄신하는 미스 신, 누가 여자를 꽃이라 했던가? 20대의 꽃띠는 몰라도 올드미스는 불독보다 무서운 군기 반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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