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전쟁 상처 껴안은 채 꿋꿋… 건물 계단 탱크 자국 ‘선명’
6·25 발발 60주년 특집

▲ 철원 노동당사는 내부가 파괴되고 건물 외벽만이 탄흔을 안고 서있다. 해방과 분단, 전쟁의 쓰린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이 건물은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22호로 지정됐다. 철원/김용식

 

그을리고 곳곳 탄흔… 총소리 들릴 듯 전쟁 참상 고스란히

폭격에 구 시가지 폐허 불구 외벽 남아 철원 수난사 증언




철원은 과거 궁예가 도읍을 옮기고 이상사회의 꿈을 펼쳤던 터전이다. 한국전쟁 이전에 북한에 의해 세워진 철원의 노동당사는 당시 번창했던 지역 경제력을 반영하듯 규모가 크고 화려했었다고 전해진다. 전쟁으로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되고 현재는 골조만 남아 있지만 건물의 잔해에서 간단치 않은 우리 민족의 근대사를 볼 수 있다.

철원 노동당사 건물은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 힘든 옛 철원 시가지에 남아 있는 많지 않은 자료들 중 하나다. 이 건물은 해방 이후 북한 정권이 세운 건물로 그 의미가 있으며, 시멘트와 벽돌로 만든 외벽만 남아 있는 건물이다. 북한이 상당한 자금을 들여서 세운 건물로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 세운 근대 건축물들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내부는 파괴된 채로 있으며, 외벽에 남아 있는 많은 탄흔들이 이 곳에서의 전투가 치열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건물은 1945년 해방 후 북한이 공산독재 정권 강화와 주민 통제를 목적으로 건립하고, 한국전쟁 전까지 사용한 북한 노동당 철원군 당사로 악명을 떨치던 곳이다. 북한은 이 건물을 지을 때 성금이란 구실로 1개 리당 백미 200가마씩을 착취했으며, 인력과 장비를 강제 동원하는 한편 건물의 내부 작업 때는 비밀유지를 위해 공상당원 이외에는 동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시멘트와 벽돌조적으로 된 3층 건물 구조인데 당시 이 건물 일대가 철원읍 시가지로 한국전쟁당시 여타 건물들이 모두 파괴됐음에도 유독 이 건물만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견고하고 튼튼하게 지어졌는지 짐작이 간다.

기록에 따르면 6·25 전쟁 때 미군 폭격으로 구 철원 시가지는 직립해 있는 모든 것들이 폐허가 됐지만 노동당사만은 오늘날처럼 번듯하게 잔존했다. 특히 이 당시 양민 수탈과 고문, 학살 기타 등등의 일들이 노동당사에서 자행됐다. 당사 뒤편 방공호에는 훗날 수많은 인골과 실탄, 철사줄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그때의 참상을 알 수 있다. 그 쓰리디 쓰린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이 건물은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22호로 지정됐다.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官田里)에 있는 옛 조선노동당의 철원군 당사는 철원 땅이 해방과 분단을 거치며 어떤 유전을 겪었는지 한눈에 보여준다. 38선 이북 지역인 철원·평강·김화·포천 일대는 인공 치하 5년 동안 이 노동당사의 관할 아래 있었다. 노동당사는 과거 인구 3만의 번화한 철원 시가지, 즉 구철원의 남쪽 관문이었다. 이제는 민간인 출입통제소가 그 앞에 서 있다.

노동당사는 1946년 초 북한 땅이었을 때 철원군 조선노동당에서 시공해 그해 말에 완공한 러시아식 건물이다. 1850㎡의 면적에 지상 3층의 무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현재 1층은 각방 구조가 남아 있으나, 2층은 3층이 내려앉는 바람에 허물어져 골조만 남아 있다.

1층 구조를 보면 몇 개의 방은 공간이 매우 협소해 1~2명이 사용하였거나 취조실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6·25전쟁의 참화로 검게 그을린 3층 건물의 앞뒤엔 포탄과 총탄 자국이 촘촘하다.

8·15광복 후부터 6·25전쟁이 일어나기까지 공산치하에서 반공활동을 하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잡혀 와서 고문과 무자비한 학살을 당했다. 한번 이곳에 끌려 들어가면 시체가 되거나 반송장이 되어 나오리만치 무자비한 살육을 저지른 곳이기도 하다.

특히 노동당사 건물입구 계단에는 육중한 무게의 탱크가 짓밟은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어 당시의 참상을 기억하면 숙연해지게 한다.

철원에 남아 있는 많은 전쟁유물 가운데 노동당사 만큼 전쟁의 참혹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지금은 검게 그을리고 건물벽에 포탄과 총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노동당사를 보고 있노라면 금방이라도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려올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6·25 때 큰 피해를 입은 노동당사는 현재 1층만 방 구조등이 남아 있고 2층부터는 무너져 내려 골조만 남아 있다.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금세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모습이 동족상잔의 비극 현장을 잘 보여준다. 이에 따라 ‘서태지와 아이들’의 3집 타이틀 곡 ‘발해를 꿈꾸며’등의 뮤직비디오 배경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또한 KBS의 열린음악회가 성황리에 열린 곳이기도 하다.

아직도 이루지 못한 우리의 간절한 소망 통일을 기원하며 부르던 노래,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처럼 남북이 서로 맘의 문을 열고 함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날은 과연 언제쯤 올까. 철원/김용식





“전쟁·죽음 공포 이겨내고자 남도 북도 노동당사 총 난사”

김영규 철원역사문화연구소장



전쟁은 철원 시가지 통째로 없애버린 재앙



   
“철원군은 전역이 수복지구다.”

김영규 철원역사문화연구소장은 “6·25전쟁은 철원을 통째로 없애 버렸다. 삶의 흔적조차 사라지게 만들었다”고 주장 했다.

향토사학자 김 소장은 “6·25가 이 땅의 주체들을 물갈이 해버렸으며 그 없어진 흔적의 잔해가 근대문화유적이고 그 대표적 상징물이 노동당사라 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남한지역 공산화를 위한 전초기지로서 철저한 보안 속에 주민들 노력 동원을 통한 철저한 공사를 거쳐 철옹성 같이 지었기에 그나마 아직까지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며 “노동당사 앞 입구 오르막 계단에는 탱크 캐터필더 자국이 선명한데 이는 미군들이 북진하면서 공산주의의 상징인 노동당사를 완전히 붕괴시키기 위해서 탱크로 밀어붙이고 포를 발사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덧붙였다.

또 “건물 외벽에 총탄자국이 유난히 많은 이유는 야간에 노동당사 주위를 지나는 아군이나 적군들이 전쟁과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을 이겨내고자 총을 마구 난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천안함 사태로 남북 간 갈등이 높아지고 있고, DMZ 지역의 적막감은 당사자들의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는 지금 노동당사를 지나며 그 외벽에 마구 총을 난사하며 전쟁의 공포를 잊으려했던 그들의 심정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며 “노동당사의 총탄구멍은 우리에게 6·25전쟁 60주년을 맞이하여 다시는 6.25와 같은 불행을 반복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굴곡진 철원현대사 자료를 조사수집해서 기록하고 자료집으로 집대성하는 일을 하고 있는 김 소장은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갔고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만들었다”며 “해방과 더불어 철원에서는 공산통치가 시작되고 이내 남침전쟁준비에 몰입하면서 북한의 최전방이자 접경지역으로서 철원의 불행한 운명이 시작된 것”이라고 철원의 근대사를 소개했다. 또 “6·25전쟁이 끝나고 이제는 남한의 최전방으로서 북과 대치하게 되면서 주인만 바뀌었을 뿐 접경지역이라는 굴레는 계속 철원을 억누르고 있는 셈”이라며 6·25전쟁 60주년을 맞이했건만 지금도 바뀐 것은 없고 통일은 요원하다고 분석했다. 김 소장은 “전쟁이라는 엄청난 재앙은 우리에게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커다란 교훈을 남겼다”며 “평화통일을 이루고 통일수도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철원의 역사적 운명”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철원/김용식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