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설실장
1910년 8월 29일은 일본 메이지(明治)천황이 한일병합을 공포하고 36년간의 식민지배가 시작된 날이다 . 우리가 경술년 국치일이라 부르는, 꼭 100년전 조선왕조가 멸망한 날이다. 이후 불법적이고 치욕적인 식민지배가 끝난지 65년이 지나서야 일본이 겨우 이를 시인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총리가 “식민지배가 가져온 많은 손해와 고통에 대해 다시한번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 부터의 사죄를 표한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담화문 발표가 종전의 입장을 크게 벗어났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래도 ‘한국인의 뜻에 반(反)한 식민지배’였음은 분명히 했다. 그리고 국가와 문화를 빼앗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혔다며 조선왕실의궤 반환을 약속했다.

우리민족의 역사는 반만년이라 했다. 시조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개국하고 즉위한 해가 기원전 2333년이니까 지금으로 부터 4343년 전의 일이다. 세계 어느민족이 이와같은 유구한 역사를 가졌겠는가. 우리민족은 이러한 역사 만큼이나 오랜세월을 중국 몽고등 주변국들의 침략으로 골머리를 앓아 왔다. 그때마다 용맹과 지혜로 침략자들을 몰아내 왔으니 참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민족이라 하겠다. 단지 근대사에 있어 잠깐 동안 일본에 주권을 내어줬을 뿐이다. 반만년에서 36년은 그야말로 잠깐이다. 그 잠깐 동안 주권을 내어줬다 되찾은 걸 두고 독립이라 할 수 있을 지는 다시 짚어 봐야 하겠으나 광복이라 하면 딱 맞을 듯 싶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8·15광복절을 성대하게 행사하는 것은 그 36년에 연연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는 역사적 교훈이고, 일본에게는 과거사를 깔끔하게 청산하지 않는 것을 준엄하게 꾸짖는 뜻이 있다 하겠다. 이제 일본이 조금이나마 과거의 잘못을 반성한다고 하니 좀더 지켜볼 일이긴 하나, 속히 위안부 및 강제징용 피해자문제를 비롯한 문화재 반환 등 과거사 해결을 위한 진정성을 보여야 할 것이다. 사과하고 반성한다면 행동으로 실천해 믿음을 보이란 뜻이다. 다시말해 치사하게 군사 쿠테타에 의한 ‘불안정한 정권’이 정권인정을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심정으로 1965년에 협상한 청구권 포기 한·일협정만 들먹이지 말라는 얘기다. 1866년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에 의해 국보급 문화재가 유출된 것을 시작으로, 해외 유출 문화재는 대략 10만7800여점에 이른다. 그중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비롯한 절반이 넘는 6만1000여점이 식민지배를 깃점으로 일본에 반출됐다. 만일 일본 문화재가 이렇듯 해외로 유출됐고, 그것이 한국에 있다면 어떠하겠는가. 입장을 바꿔보란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제65주년 광복절 기념식 경축사에서 “통일은 반드시 온다. 그날을 대비해 통일세(稅)등 현실적인 방안을 준비할 때”라고 했다. 지난 60여년이 독립의 역사였다면 앞으로의 역사는 통일의 역사라는 뜻으로 풀이 된다. 독일의 분단은 그들의 야욕이 원인이었으나, 우리의 분단은 일본의 야욕이 낳은 결과물이다. 일본에 의한 식민 시대에서 벗어 나자마자 그 원인으로 인해 분단의 시대가 시작됐고, 그 분단이 민족상잔의 전쟁을 불러 왔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3년전쟁은 이산의 아픔을 가져왔다. 오늘 우리민족의 비극이 일본의 식민에서 부터 비롯됐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민족의 비극은 통일로 매듭지어질 수 밖에 없다. 그만큼 통일은 민족의 염원이다. 그럼에도 통일에 다가서는 정부의 입장은 매우 조심스럽기만 했다. 통일비용도 문제지만 북의 급격한 붕괴는 남북 전체에 심각한 혼란을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분단상황을 관리’하는 정부의 입장이‘적극적인 통일준비’로 변화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이제 그 역사적 사건이 언제 오느냐가 문제다. 수십년 후가 될 수도 있겠으나 어느날 갑자기 올 수도 있다. 그때는 일본도 비용 문제에 동참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것이 싫다면 100년전 우리를 침탈하지 말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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