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순·순결 이미지에 지혜까지 겸비 만인 사랑 독차지

   
용왕의 딸이 몹쓸 병에 걸렸다. 토끼의 간이 명약이라 하여 용왕은 만조백관을 불러 뭍에 사는 토끼의 간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를 논의한다. 그 끝에 자라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뭍으로 나온다. 자라는 감언이설로 토끼를 유혹해 이윽고 용궁으로 데리고 들어온다. 토끼는 물속으로 들어와서야 자기가 속았다는, 뿐만 아니라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러나 꾀 많은 토끼는 자기의 간을 노리는 자들이 많아서 평소에 늘 숨겨놓고 다닌다고 거짓말을 해 위기에서 벗어나 뭍으로 나온다. 우리의 대표적 판소리계 고전인 ‘토끼전’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구토설화(龜兎設話)를 제재로 한 우화소설이다.

구토설화의 근원이 된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을 보면 김춘추가 백제에 복수하려고 고구려로 청병갔다가 오히려 고구려 옛땅을 반환해달라는 요구를 받고 붙잡히는 몸이 됐다. 그때 김춘추는 고구려를 탈출하기 위해 고구려 신하 선도해(先道解)에게 술대접을 해주었다. 구토설화는 그때 술에 취한 선도해가 김춘추에게 들려준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였다. 김춘추는 거기서 토끼의 지혜를 얻어 고구려를 탈출해 나왔다.

‘구토지설’은 그 후 ‘토끼전’ ‘별주부전’ 등의 제목을 달고 세상으로 퍼졌으며 판소리에서는 ‘수궁가’라고 불린다.

우리 조상들은 토끼가 주는 순결함과 평화로움 때문에 일찍이 토끼를 이상향에 사는 동물로 만들어 놓았다. 옛 사람들은 달을 늘 이상향으로 그렸고, 그 이상향에는 계수나무와 함께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다고 했다.

우리의 전통 민속화에서 해(日)는 곧잘 발이 셋 달린 까마귀로 표현되고, 달(月)은 토끼로 표현된다. 토끼는 달 없이는 못 산다. 그래서 암토끼는 수컷이 없어도 달과 교합해 새끼를 낳는다고 했다. 토끼가 어두운 밤 달나라에서 방아찧을 수 있는 것은 눈이 그만큼 밝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끼 눈을 명시(明視)라고 했다.

토끼는 묘(卯)인데 음력으로는 2월, 시간으로는 오전 5시부터 7시 사이를 가리킨다. 음력 2월은 농사가 시작되는 달이고 묘시는 농부들이 논밭으로 나가는 시간이니 토끼는 성장과 풍요를 상징하게 된 것이다.

토끼는 우리 민족과 인연이 깊으며 사랑 또한 많이 받아온 동물이다. 뿐만 아니라 현대에서 예쁘고 귀여운 자녀나 손자손녀들에게 곧잘 ‘토끼같은’의 수식어를 붙이고 있다. 이렇게 우리에게 알려진 토끼는 온순하고 선량한 동물의 상징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칠 수 없을 것 같고 끼칠 것 같지도 않은 선량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며 귀엽기까지 한 동물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용궁에서처럼 번뜩이는 기지와 지혜를 가지고 있기에 그 연약함 속에서도 12마리 띠 동물의 한자리를, 그것도 당당하게 백수(白獸)의 왕인 호랑이 다음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토끼는 깨끗하고 귀여운 이미지로 인해 특히 공예품에 많이 그려지고 새겨졌다. 국보 제95호 청자칠보투각향로의 받침도 토끼상이고, 연적으로도 토끼상을 많이 쓰고 있다.

2011년은 신묘(辛卯)년으로 신(辛)은 오행(五行)에서 흰색을 의미하고 묘(卯)는 토끼를 의미해 ‘새하얀 토끼’의 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백색을 숭상해오며 흰옷을 즐겨 입어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고 불려왔다. 백색은 한편으로 태양의 빛을 상징하여 광명을 의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청정과 순결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일제 강점기에는 백의(白衣)가 민족정기를 지키는 항일(抗日)의 상징이 되기도 하는 등 우리 민족은 이렇게 백색과 깊은 관계가 있다.

토끼는 특히 뒷다리가 발달돼 있어서 내리막보다는 오르막이나 산에서 빨리 달릴 수 있는 동물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렇게 힘든 산비탈과 오르막을 잘 뛰어 오르는 토끼를 묘(卯)에 배치시키며, 기다리던 희망의 새봄과 희망의 새 아침이 깡충깡충 빨리 다가오기를 학수고대했을 것이다. 윤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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