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龍)에 관한 얘기는 한도 끝도 없다. 동양인들의 용에 대한 상상이 그 종착지를 헤아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중국 책 ‘광아(廣雅)’엔 용이 다른 짐승의 9 가지 유사한 모양새를 갖추었다고 주장한다. 즉, 머리는 낙타, 뿔은 사슴, 눈은 토끼, 귀는 소, 목덜미는 뱀, 배는 조개,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 주먹은 호랑이와 비슷하다고 상상한다.

이런 용을 우리 책 ‘훈몽자회’는 “미르 용”이라 했으니, ‘미르’는 ‘믈’ 즉 ‘물(水)’과 통하고, 또 ‘미리’ 곧 ‘예시’ ‘예언’과 관련된다. 서해 용왕이 왕건의 할아버지 작제건(作帝建)에게 “군지자손 삼건필의(君之子孫 三建必矣·동방의 왕이 되려면 세울 ‘건’ 자 붙은 이름으로 자손까지 3 대를 거쳐야만 한다)“라 일러준 것처럼 용은 물과 관련되고, 또 미래를 미리 알려주기도 한다. 불가에서는 과거불을 비바시불(毘婆尸佛), 현세불을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그리고 미래불을 미륵불(彌勒佛)이라 하는데, 여기의 ‘미륵’ 역시 ‘미르’와 상통한다.

요즘도 동해안 지역에선 용왕굿이나 용신제를 지낸다. 용왕굿은 식수 고갈을 예방하려는 의식인데, 농악대가 우물 주위를 빙빙 돌며 빠른 농악을 울리다가 갑자기 농악을 뚝 그치고 상쇠잡이가 우물을 향해 “물 주쇼, 물 주쇼. 용왕님네 물 주쇼. 뚫이라, 뚫이라. 물구멍만 펑펑” 하며 축수 기원을 하지 않던가. 용왕제는 주로 어촌의 부녀자들이 음력 정초나 2월초 만조를 택하여 해변에 제물을 차려놓고 사해용왕에게 가족의 안전과 풍어를 비는 의식이다.

깊은 물속에 사는 큰 구렁이를 ‘이무기’라 하고, 이 이무기가 천 년을 묵으면 용이 되어 하늘에 오른다고 상상한다. ‘용 못 된 이무기 심술만 남더라’, ‘용 못 된 이무기 방천(防川·둑) 낸다’는 속담은 우리 조상님들이 이무기의 존재를 확신했다는 의미를 드러내지 않는가. 어느 날 갑자기 땅속에서 물이 솟아오르고, 그 속에서 흰 용이 나타나 하늘로 올라갔다는 형식의 이른바 ‘용연 전설’이 도처에 있다. 사람들은 이를 이무기의 승천으로 믿는다.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가 비교문화 차원에서 십이지신(十二支神) 시리즈를 내는데, 그 세 번째 책으로 ‘십이지신 용’을 펴냈다. 이 책 서문에서 이어령 교수는 변화무쌍한 용이 “글로벌한 세계 시스템 속에서 정보지식 IT를 이끄는 힘을 지니고 있다”며, “이종교류와 배합, 그리고 이종 격투기와 같이 서로 섞이고 융합하는 놀라운 통합의 시대, 용의 시대가 찾아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뭔가 기대되는 임진년(壬辰年), 용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이광식 논설위원 misan@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