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태풍경보로 항공기들은 활주로 주변으로, 함정은 항구로 집결돼 있었다. 7시30분, 고공폭격기가 활주로와 격납고에 폭탄을 투하했다. 뇌격기들은 함정 어뢰 공격을 시작했다. 캘리포니아호가 제일 먼저 2발의 폭탄을 선체에 맞았다. 웨스트 버지니아호도 비틀거리며 바다 속으로 침몰했다. 오클라호마호는 선체가 뒤집혀 버렸다. 군악대의 주악 속에 국기 게양식이 진행되고 있던 네바다호도 기총 세례를 받았다. 수리선 베스탈호는 2발을 맞았고, 연료실을 정면으로 맞은 아리조나호는 순식간에 1천100명의 생명을 잃었다. 하늘은 먹이 사냥에 나선 일본군 비행기 뒤덮였고, 항구는 마치 생일 잔치의 촛불 끄기 장면처럼 암흑으로 변했다. 1941년 12월 7일, 암호명 "도라 도라"의 진주만 기습공격 상황이다.

지난 9일 오후(현지시각) 진주만 인근 오아후섬 남쪽 18㎞지점에서 작전중이던 미해군 핵잠수함 '그린빌'호가 부상하면서 일본 우와지마(宇和島) 수산고교 실습선 '에히메마루'를 들이받아 10분만에 침몰시켰다. 35명 중 26명이 구조됐으나, 고교생 4명을 포함 9명은 실종됐다. 이 사건 후 일본의 언론들은 전략전문가 등을 동원해 하와이 주둔 미 해군의 실체를 거의 발가벗기고 있다. 전략 전술은 물론 작전수행능력까지 해부해 놓는 민간의 정보수준은 놀라울 정도다. 99년 3월 존 햄리 당시 미 국방부 부장관은 의회 보고에서 "다음 진주만 공습은 해군 기지에 정박한 함정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상업적 인프라에 대한 공격 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정보력이 상업적 인프라에서 구축되는 것이라고 볼 때 이 예언은 적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교실습선의 침몰로 갑자기 미묘해진 두 나라의 외교관계를 보면서 새삼 알게 된 것은 일본은 고등학교 실습선이 태평양을 횡단해 하와이 군도까지도 간다는 사실이다.


咸光福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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