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바다의 화끈한 선물… 행복한 맛 ‘복불복’
날씨·계절따라 생선 달라 설렘·기대감·떨림 ‘만끽’
물고기 2∼3가지 조화 고성지역 특유의 풍미

금강산 문턱에 자리 잡은 고성. 그곳에 가면 언제나 시원한 해풍과 쪽빛 바다가 우리를 반긴다. 이제는 몇 년째 뱃길이 막혀 녹음이 우거진 북녘 봉래산(蓬萊山)에 한달음에 갈 수 없지만, 해안 기암괴석과 푸른 호수가 명산을 가지 못한 안타까움을 달래 준다. 천혜 절경이 미처 보듬어 주지 못한 마음은 청정 동해가 고스란히 담긴 ‘매운탕’ 한입에 시원하게 사라진다.


 

▲ 보글보글 끓고 있는 매운탕


# 한국인 국물 사랑

우리 민족은 국을 좋아한다. 한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도 밥과 국이다. 여기에 김치만 있으면 한 끼 식사로 부족함이 없다. 오죽하면 국물 민족이라는 말까지 있을까.

국은 만드는 방법과 재료에 따라 ‘갱(羹)’, ‘확’, ‘탕(湯)’, ‘찌개’, ‘지리’ 등으로 불린다.

서양의 스프, 몽골의 슐, 일본의 나베 등 세계 곳곳 국물요리가 즐비하지만 우리 선조처럼 다양한 국물 요리를 즐긴 민족도 없을 것이다. 특히 생선을 넣고 끓인 국과 찌개는 우리네 밥상 단골 메뉴다. 그 중에서도 단연 으뜸은 매운탕이다.

‘매운탕’은 말 그대로 매운맛이 나는 탕이다. 제철 생선을 이용해 대파, 무, 콩나물, 두부, 소금, 고춧가루를 넣어 끓인다. 맛이 시원하고 얼큰해 밥반찬, 술안주로 그만이다. 이 음식의 유래를 찾자면 고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사 김방경 열전’을 보면 원나라 황제가 일본 출정을 앞둔 김방경에게 정벌 성공을 기원하는 의미로 쌀밥과 생선국을 하사했다고 한다. 그때 원나라 황제가 말하길 “고려인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내린다”라고 표현했다.

물론 문헌에는 정확한 요리법이 명시돼 있지 않으나 정황과 내용을 유추해 봤을 때 고려 시대부터 생선국을 즐겨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금 형태의 매운탕 모습이 자리 잡은 것은 아마도 조선 시대부터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유는 매운탕의 주재료인 고추(고춧가루)가 임진왜란(壬辰倭亂) 전후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1800년대 작성된 시의전서(是議全書)를 보면 궁중 수라상에 올랐던 조치라는 이름의 생선찌개가 문헌에 처음 등장한다. 또 1913년 방신영(方信榮)이 쓴 조리서 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을 살펴보면 “붕어 2홉을 잘 씻어 꼬리와 주둥이 끝만 잘라 버리고 아가미 밑으로 내장을 빼고 정하게 씻어서 냄비에 담고 고기를 얇게 썰어 넣고 간장과 고추 이긴 것과 물을 치고 오래 끓여서 먹느니라”고 붕어찌개를 만드는 법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지금의 매운탕과는 사뭇 다르지만, 우리 선조가 생선을 이용해 탕과 국을 즐겼던 역사적 뿌리는 매우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고성 애기미마을(아야진) 전경


# 애기미 마을의 맛집

▲ 싱싱한 바닷고기들

잡어 매운탕의 맛을 찾아 나선 곳 고성군 토성면 아야진(我也津)리. 산 모양이 也(야)자처럼 생겨 이름 붙여진 마을이다. 그러나 이곳 주민은 작은 항구라는 뜻을 가진 애기미라고 더 많이 부른다. 아야진은 작은 항포구를 끼고 아랫마을, 윗마을로 나뉘어 살고 있다. 이곳은 유독 6·25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 등대의 북쪽 바다에는 멍이 섬이라고 부르는 부서진 바위섬이 있는데 과거 섬의 모양이 군함처럼 생겨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군함으로 오인해 폭격하는 바람에 지금처럼 부서진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부둣가와 해변 주위에 횟집이 줄지어 있다. 발길 따라 어느 가게에 들어가도 친절한 인심과 뛰어난 맛에 감동한다.

사시사철 잡히는 광어, 우럭은 기본이요. 그 맛이 일품이라는 바다 못난이 삼세기(삼수기·멍텅구리), 괴도라치(전복치), 베도라치, 물망치 등 청정 동해에서만 잡히는 물고기로 끓인 매운탕은 개운하고 시원한 맛을 자랑한다. 고추장과 고춧가루로 인해 붉은 노을처럼 물든 국물에 살이 통통 오른 생선과 갖은 채소가 어우러진 얼큰한 맛은 입안을 행복하게 감싼다. 비린내 없이 담백하면서도 알싸한 맛은 고성의 매운탕이 왜 별미인가를 알려준다.

‘해양 활어 자연산전문점’ 김길호(51) 대표는 “고성 매운탕 맛이 좋은 이유는 그날 어획하는 물고기를 사용하기 때문이다”라고 운을 뗐다.

김 대표의 아침 일과는 봉포항, 대진항을 방문해 요리할 횟감을 고르는 것이다. 그날 생물이 없으면 장사를 접을 정도로 싱싱한 재료가 맛을 좌우한다는 것이 김 대표의 신념이다. 항상 최고의 재료를 사용해 만든 회와 매운탕 맛에 반했는지 김영삼 전 대통령, 박원순 서울 시장, 도올 김용옥 선생도 한번 맛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 중 손님들에게 가장 반응이 좋은 것은 회를 주문하면 사이드 메뉴로 나오는 7∼15가지의 잡어회다. 오줌싸개, 놀래기(놀래미), 미역치, 돌참치 등 우리가 들어 보지 못한 잡어 회의 맛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또 보통 매운탕은 회를 먹고 난 생선머리와 뼈를 이용해 끓이지만, 이곳에서는 손님이 원하는 생선을 이용해 매운탕을 끓여주고 있다. 2∼3가지의 물고기가 조화를 이뤄 타 지역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색다른 맛으로 입안을 즐겁게 한다.

김 대표에게 맛있는 매운탕의 비법을 물어봤을 때 그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는 “매운탕의 맛은 재료에 있지만, 중요한 것은 끓이는 방법에 있다”며 “무, 양파, 다시다, 대파에 조미료 없이 소금간과 고추장을 풀고, 물이 끓기 시작할 때 생선을 넣어야 고유 맛과 특유의 비린내를 없앨 수 있다”고 밝혔다.

‘유리집’ 곽금희 (여·59) 사장 역시 싱싱한 재료와 끓이는 방법을 강조했다. 그녀는 “집에서 직접 담근 장과 어판장에서 공급받은 생선을 사용해 만들기 때문에 특별한 비법 없이도 맛있다”고 말했다.

물론 만드는 방법은 집집이 다를 수 있지만, 이곳 아야진에서는 주된 생선 이외에 다른 생선 2∼3가지를 섞어 끓여 맛이 더 좋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고성에서는 매운탕을 ‘잡어 매운탕’이라고 부른다고 전했다.

유리집은 사철 잡히는 생선이 달라 매운탕 이외에도 계절에 따라 다양한 음식을 선보인다.

그녀는 “겨울 털게탕, 가을 도루묵찌개, 여름 열갱이(조피볼락) 조림 등을 선보인다”고 말했다.



# 설렘의 맛

▲ 김길호 해양활어 자연산 전문점 대표

봄 금강산(金剛山), 여름 봉래산(蓬萊山), 가을 풍악산(楓嶽山), 겨울 개골산(皆骨山)…

금강산은 사계절 다른 자태를 뽐낸다. 금강산 문턱에 자리 잡은 고성의 음식은 금강산과 닮아 있다.

고성 매운탕은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잡히는 물고기가 달라 사시사철 다른 맛을 머금고 있다. 그곳에서 처음 맛본 생소한 물고기는 어느새 나만의 별미가 된다. 보이지 않는 상자 속에 무엇을 뽑을지 모르는 긴장, 떨림, 기대감이 있는 행복한 맛의 ‘복불복’이 고성 잡어 매운탕이다. 이동명·조병수·이승훈

자문: 윤덕인 관동대 교수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