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창씨내력이라든지 시조의 업적, 사당의 규모나 위치, 중심인물들은 이미 앞에서 밝힌 여러 문헌자료에 자상하게 기록되어 전해지므로 그보다는 다른 각도에서 취재하고 기사화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잘못 알려지거나 전해지는 기록을 바로잡는데 비중을 둘 것이다. 사전 지식을 쌓은 다음 자료들을 지참하고 필자가 직접 종친회에 찾아가 상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 동안 잘못 알려지거나 전해지는 내용이 바로잡아질 것이다.

 문중에 전해지는 미담사례를 집중 발굴하여 전한다. 전승되는 전통가례나 종훈(宗訓)도 잘 풀어서 소개하고 지방문화재나 국보급 가보도 소장하게 된 유래와 함께 그 가치를 밝힌다..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인물도 언급하겠지만 특히 구한말 이후 근현대사에 나타났던 인물들의 행적을 부각시키는 작업도 의미있게 다룰 것이다.

 취재차 강릉을 찾았었다. 강릉 최씨 한 성씨에 여러 계파가 강릉에 있으려니 했다. 그러나 종친회 사무실을 따로 쓰고 있었다. 어느 한쪽만 기사화할 수 없어서 다른 두 종친회 사무실도 들러 취재했다. 특별히 강릉 최씨를 세 번에 걸쳐 연재할 수 없으므로 한 회에 다루기로 논설위원실과 합의를 보았다. 그런 어려움도 있음을 밝힌다.

 중고교생이 읽어도 납득이 갈 정도로 쉽고 흥미있게 쓸 예정이다. 귀에 익은 웬만한 관직이나 제례 용어 따위는 그대로 사용하되 그렇지 않은 경우 한자와 함께 독음을 달고 근래의 직명과 해설을 덧붙여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게 배려할 것이다.

 이번 연재는 발로 쓰는 작업이 될 것이다. 도내에 산재한 종친회 사무실을 찾아가 취재하고 직접 사당이나 묘소를 참배하며 여러 모습들을 알차게 필름에 담는다. 그 수고로움이 헛되지 않게 연재를 마치는 순간까지 챙기고 솎을 것이다. 

 ■ 姓씨 제도

 성씨제도가 우리나라에 정착된 것은 삼국시대이다. 당시 성씨를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왕족이나 지배계층이었다. 왕이 신하에게 성을 내려주어 새로이 성씨가 생겨나기도 했고 조상의 전설에 따라 성씨를 만들기도 했다. 왕족과 귀족의 뒤를 이어 일반 백성들이 본격적으로 성씨를 가지게 된 때는 고려시대에 들어와서이다.

 태조 왕건은 여러 가지 개혁정책을 마련했다. 그 중 하나가 사성정책(賜姓政策)이었다. 백성들마다 모두 성을 가지게 함으로써 호족세력을 규합하고 통제하려 했다. 조정에서는 나라에 큰공을 세우고 낙향하거나 일찌감치 한 고장의 토족이었던 세력가에게 본관과 함께 식읍(食邑)을 내려 그 고을을 다스리게 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했다. 도내 대부분의 성씨들도 이때 본관을 가지게 되었고 성씨를 사용하는 백성들이 늘어나면서 군현의 지명을 딴 관향을 중심으로 문벌이 형성되었다.  

 ■ 강원지역 본관 姓씨

 강원도내 본관성 가운데는 그 성씨의 시조(始祖)와 본관지의 연관성이 삼국사기나 고려사 같은 역사서에 명확하게 밝혀진 성씨도 있고 그 성씨의 세보에 나타난 기록에만 의존해 연관성이 밝혀진 성씨도 있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는 강릉 김씨 시조 김주원이다.

 강원도내에 본관을 두고 있는 성씨 외에 강원도 세거씨족(世居氏族) 즉 타도에 본관을 두고 강원도 땅에 뿌리를 내린 씨족들을 지역적으로 살펴보면 한반도의 중부지방인 경기도 황해도와 강원도 이남 지방의 본관지가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고 평안도나 함경도 지방에 본관을 둔 성씨는 드물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강원도의 경우 철원 춘천 양양 이남지역은 관향지가 많고 김화 양구 고성 이북지역은 드물다는 것을 알게 된다. 추측해보건대, 산악이 많고 농토가 척박한 강원북부나 관서, 관북지방은 백성들이 삶의 터전을 잡고 누대에 걸쳐 자손을 일으킬 여건이 부족했던 탓에 세거한 씨족이 적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죽하면 조선시대에는 경상도 전라도에서 강원도나 함경도 땅으로 백성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는 사민정책(徙民政策)이란 제도가 나왔을까.

 193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문헌기록에 나타난 우리나라 성씨는 대략 260 성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우리 강원도의 경우, 1940년 발간한 강원도지에 170 성, 1960년 인구센서스 통계자료에 169 성으로, 전국 통계수치와 비교해 보면 거의 1백 성 가깝게 큰 차이가 난다. 세거씨족이 중부 이북으로 올라갈수록 적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강원도내 전체 성씨를 170 성으로 보았을 때 42%인 72 성이 강원도 땅에 뿌리를 내리고 대를 이어 살아온 세거씨족이고 그 중 강원도에 본관을 둔 성씨는 18%인 31 성이다.(1940년 강원도지 기준) 1963년 행정 개편 때 경상북도로 편입된 울진 평해와 휴전 이후 강원북도에 속한 통천 평강을 제외한 현재 도내 본관지와 성씨는 11개 시군 21 성으로 파악된다.

 ◇강릉; 김 최 유 함 박 ◇원주; 변 원 김 이 ◇삼척; 김 심 ◇영월; 엄 신 ◇횡성; 고 조 ◇춘천; 박 ◇평창; 이 ◇간성; 이 ◇정선; 전 ◇동주(철원); 최 ◇홍천; 용  

 ■ 도내에 입향한 姓씨들

 도내에 입향한 세거씨족들이 어떤 계기로 강원도와 인연을 맺었는지 살펴보는 일도 매우 흥미롭다. 입향 계기를 개괄적으로 나누어 보면 피난지에 정착, 벼슬살이와의 인연, 유랑하다가 정착, 은거지 또는 유배지 정착, 이것도 저것도 아닌 무연고지, 이렇게 다섯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강원도와 혈연적 연고관계는 없으나 피난지에 내려왔다가 그대로 정착한 예로는 경주 김씨, 전주 이씨, 해주 오씨 등이다.

 둘째, 본도의 수령이나 방백으로 벼슬살이를 왔다가 인심 좋고 산자수명한 강원도 땅에다 인연을 맺은 예로써 영월 엄씨, 원주 원씨, 인동 장씨, 강릉 김씨가 그 본보기다.

 셋째, 중시조를 밝히고 그 후손이라 한 것은 우선 입향 동기가 분명함으로 유랑하다가 정착한 성씨는 아니다. 시조 이름만 밝혀있는 씨족 중에 가계가 뚜렷하지 못하여 계파를 밝히지 못하다가 나중에 자손이 번창한 가문이 여기 유랑에 해당된다.

 넷째, 은거지 또는 유배지에 내려왔다가 그대로 정착한 예로는 계유정란 때 김화로 은거한 영해 박씨 박량, 을사사화 때 정선으로 내려온 덕수 이씨 이자 등이 대표적이다.

 다섯째, 강원도가 부임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피난지나 유배지도 아닌데 정착한 예로 양양에 입향한 경주 김씨 김직, 김화에 입향한 김해 김씨 김인용이 그렇다.

 ■ 선정 조건

 우선 논설위원실과 필자가 사료를 참고로 도내 33개 본관성씨와 명문세가로 알려진 세거씨족들을 취합해서 연재 계획을 짜고 강원대 최승순 교수(명예)의 자문을 얻었다. 그 과정에서 한국성씨대관에 누락되거나 멸족이 되다시피한 도내 본관성을 추려내고 선정 순서를 다시 정했다. 그 순서는 다음과 같다.

 첫째, 큰공을 세운 공신의 위패를 영원히 사당에 모실 것을 왕명으로 정한 불천위(不遷位)를 모신 집안.

 둘째, 도내 본관성씨인 토성(土姓)

 셋째, 역사적으로 지명도가 높은 집안.

 최승순 교수의 논문 "강원도 세거씨족고"를 기본으로 하고 중앙일보사 간 "성씨의 고향", 일신각 편 "한국의 족보" 뿌리찾기운동본부의 "한국의 성씨" 등에 나타나 있는 세거씨족들의 분포 인구 등을 참조하여 세 가지 선정조건을 엄격히 준수하되 현실성을 감안하여 선정작업에 들어갔다.

 도내 본관성씨 20개 성, 명문세가가 16개 성, 도합 36개 성이 선정되었다. 선정된 36개 성은 1년간 주 1회씩 지면이 허락되는 대로 연재될 것이다.(여러가지 사정을 감안하여 선정된 성씨는 지면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음)

글/사진=崔鍾南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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