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의 땅서 검은 대륙까지 “사랑의 인술에 정년 없어요”

▲ 2006년 해외봉사 모습.
대학 시절 1958년 봉사 시작 빈민촌·농촌·수해지 순회

1995년 한방해외봉사단 자원 21개국 20차례 무료진료 펼쳐

“올해도 비행기 타야죠”



“의료봉사에는 정년이 없습니다.”

국내외를 넘나들며 왕성한 의료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임일규(78) 도한의사회 명예회장은 팔순을 바라보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봉사’라는 두 글자에 아직 설렌다.

‘한국의 슈바이처’를 꿈꾸며 의료봉사에 큰 뜻을 품었던 대학 시절의 각오가 아직까지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남보다 자신의 건강을 더 걱정하며 신경써야 할 나이이지만, 여전히 그에게 봉사는 삶의 청량제처럼 시원하고 달콤하다.

사랑의 인술은 동양의약대(경희대 전신) 한의학과에 재학 중이던 1958년 양양에서 처음 시작됐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8시간여 달려 도착한 그곳에서 치료비 한 푼 없이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증 환자를 만났다.

그는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는 노인의 가슴 저린 절규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이때부터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의료봉사를 펼치겠노라 다짐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듬해 한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해 서울 성동구에서 한의원을 개원한 임 회장은 이후 빈민촌 주민들에게 무료 진료를 하며 본격적인 의료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1972년에는 춘천시 신북읍 유포리와 천전리에서 400여명의 농촌주민을 진료한 것을 시작으로 1983년까지 경기 용인, 양주, 충남 아산, 홍천 등 서울 외곽과 수해 지역을 돌며 순회 의료봉사 활동을 펼쳤다.

가슴 벅찬 뿌듯함과 보람으로 한의사로서의 자긍심도 만끽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홍천에서 만난 고령의 중풍 환자는 그에게 ‘생명의 은인’이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머리와 손, 발 등에 침을 놓아주고 발마사지를 해줬던 것이 전부였지만, 환자에게는 ‘사랑의 묘약’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환갑을 맞던 1995년에는 대한한의사협회 산하 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Komsta)에 자원, 여생을 제3세계 무의촌 빈민들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했다.

러시아 사할린을 시작으로 중국 옌볜,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베트남 호치민, 몽골 울란바트로, 캄보디아 프놈펜, 스리랑카 자프나 등 21개국에서 20차례에 걸쳐 무료진료 활동에 참여했다.

 

▲ 의료 봉사를 위해 에티오피아를 방문한 임일규 원장(사진 오른쪽)이 참전용사를 치료해주고 있다.

자비로 항공료와 숙박비 등을 모두 해결해야 하는 경제적 부담 때문에 무작정 따라나섰다 혀를 차며 두 손 두 발 들고 포기했던 의사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해외 봉사에 나설 때면 각종 선물 꾸러미와 태극기도 잊지 않고 챙겨간다.

해외 첫 봉사지인 사할린에서는 현지 한국교육원에서 만난 한국인 부자(父子)와 인연도 맺었다.

그는 “그곳에서 만난 한 교사로부터 자신의 아들이 크면 나처럼 한의사를 시켜야 겠다는 말을 했었다”며 “그런데 진짜 수년 뒤에 그 (아들이란) 사람이 한의사가 되어 신기하고도 매우 흡족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 임 회장이 20번째 해외봉사지로 택한 사할린에서 꿈만 같았던 의료 봉사를 함께 펼쳤다.

‘얼음의 땅’ 사할린에서 ‘검은 대륙’ 에티오피아까지 지구촌 곳곳을 돌며 가슴 찡했던 순간도 많았다.

에이즈와 피부병 등 온갖 질병과 기아를 견디지 못해 쓰러져가는 아이들을 지켜보며 눈물을 훔친 적도 수십차례.

특히 “끝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길게 늘어선 환자들을 미처 다 진료하지 못한 채 뒤돌아 설 때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미안함이 솟구쳤다”고 회상했다.

그래도 그는 “갈 땐 울며 갔지만, 올 땐 웃으며 오는 곳이 제3세계 국가들”이라고 했다. 해외 원정 봉사에서 느끼는 보람만큼이나 아쉬움도 크기에 그는 올해도 자비를 들여 비행기를 탈 계획이다.

그는 “올해 해외의료봉사단이 창단한지 20주년을 맞는다”며 “그 어느 나라가 됐던 아쉬움 보단 보람을 최대한 안고 돌아올 수 있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한편 춘천 칠전동에서 임일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임 회장은 춘천고, 경희대 한의학과를 나왔으며 상지대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다.

의료봉사활동 공로로 1994년 제3회 허준의학상, 1996년 KBS 자랑스러운 강원인, 라이온스클럽의 무궁화사자금상, 2012 한의혜민 대상 등을 수상했다.

최경식 kyungsik@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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