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등단 50주년 전상국 소설가

열등감 극복하려 글공부 시작

내년 초 ‘죽음’ 다룬 작품 출간

10년째 김유정 문학촌장 역임

“작가로서 누군가는 해야 할 일”

 

▲ 전상국(73) 소설가가 평소 즐겨 찾는 찻집에서 등단 50주년을 맞은 소회를 털어놨다. 최경식

“나는 다시 태어나도 글을 쓸 겁니다.”

고희를 넘긴 전상국(73) 소설가가 올해로 등단 50주년을 맞았다. 17일 오후 춘천시 소양로에 위치한 고풍스런 분위기의 한 찻집에서 반세기 동안 문학과 동고동락한 그를 만났다.

책읽는 찻집으로 불리며 예스러운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이곳에서 그는 동료 시인과 바둑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등단 50주년을 축하드린다”라는 인사에 “(등단)50년이 됐다는 것도 깜빡 잊고 있었다”며 덤덤하게 말문을 연 그의 표정에선 오히려 남은 작가 인생에 대한 욕심이 훨씬 많은 눈치였다.

그는 글 인생이 얼마나 길고 짧은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다만 50주년이 갖는 의미에 대해선 ‘한 번쯤 뒤를 돌아볼 시간’이라고 차분하게 정의를 내렸다. 작가는 “힘들었던 시간도 있었지만 되돌아보면 즐거운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한다”며 “남긴 것이 많지 않아 작가로서의 반성과 아쉬움도 든다”고 소회했다.

그는 중학교 시절 본격적으로 책과 만났다. 서점에 들러 ‘루팡’과 같은 당대 최고의 추리 소설들을 접하며 서점의 ‘터줏대감’ 노릇을 했다. 그러다 작가의 길을 꿈꾸게 된 계기는 고교 시절 문예반 스승으로부터 들은 충격적인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그는 “당시 스승으로부터 어휘력과 문장력이 없다는 말을 듣고 충격에 빠졌었다”며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글공부가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고 고백했다.

196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서 단편 ‘동행’으로 등단한 그는 이후 10년 동안 어떤 작품도 내놓지 못했다. 작가에게 그 시간은 “문학이 왜 내게 필요한 것인지를 알게 해주는 준엄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그는 50년의 세월 동안 순수 창작으로만 4편의 장편과 10편의 중단편을 썼다.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글쓰기를 병행한 것 치고는 적지 않은 작품들이다. 그는 “여태껏 단 한 번도 청탁에 쫓겨 글을 쓴 적이 없다”며 “정작 내가 쓰고 싶을 때 즐겁게 쓰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나의 대표작은 탄생하지 않았다”는 말로 글짓기에 욕심을 보였다.

“내 나이쯤 되면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되는데 하면서도 글쓰기만은 내려놓지 못하겠다”는 것이 그의 속마음이다.

그는 이를 ‘장인 정신’이라고 표현해도 좋지 않겠느냐며 차기작을 슬쩍 소개했다. 작가는 그동안 분단과 악의 문제를 주로 다뤄왔다. 그러나 이제는 원초적인 죽음의 문제를 글로 표현해보고 싶다고 했다. 내년 초쯤이면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의 작가 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하나 더 있다. 1985년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해 올해로 10년째 김유정 문학촌장을 맡으며 김유정 선생을 선양하는 일이다. 그는 “작가로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인 것 같아 시작했다”며 “김유정문학촌이 크게 성장한 것을 보면서 매우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철저하게 글을 즐기며 정직하게 글쓰기에 천착해 온 소설가 전상국. 버버리 코트를 휘날리며 찻집을 유유히 빠져 나간 그는 내일도 승패와 룰도 없는 자신과의 (글쓰기)게임에 한껏 빠질 것이다. 최경식 kyungsik@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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