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후 국민 위로하던 그 노래
좌절 분위기 쇄신 나선 제3공화국
김동환 詩 곡조 붙여 ‘명랑가요’ 인기

▲ 박재란 산 넘어 남촌에는 앨범

보드란 볕에 녹은 눈(雪) 물이 제법 재잘대며 마른 도랑을 적시고, 장끼 소리는 골 안에 쩡쩡 울려 퍼지며 바람은 토끼 겨드랑이 털 같은 봄날이었다. 그날은 나의 오촌 아제비가 어린 조카에게 항복을 한 날이기도 했다. 앞산에 나무하러 갈 때마다 함께 데려가 달라며 따라 나서는 나를 여덟살이 되면 데려가 주겠다고 달래 왔었기에, 그 조카가 그 나이가 된 마당에야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룻배로 강을 건너고 소담스런 원추리 오솔길을 지나서 다시 물억새 돋는 개울을 건너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따라 산등성이에 오르니, 방금 알을 깨고 나온 산동백꽃들이 삐악 거리고 있었다. 숨이 하늘에 치닿을 즈음 당도한 산마루에서 뒤를 돌아본 나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장관을 목격한다.

노도처럼 줄지어 밀려오는 보랏빛 산봉우리에 나는 그만 넋을 앗기고 말았다. 나뭇짐을 다 채운 아제비가 집으로 가자며 도리어 나를 조를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턱을 괴고 앉아 저 산 너머는 어디일까? 저기 저 산 아래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해 기우는 것도 몰랐다. 그 날은 아련한 호기심과 그윽한 그리움으로 마음을 채운 하루였다.

오늘 감상할 곡은 봄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노래 박재란의 <산 넘어 남촌에는> 으로 나의 애청곡 50선 안에 꼽는 노래이다.

1960년대 초반 막 들어선 제3공화국 정부는, 일제와 6·25전쟁을 거치며 국가 전체에 만연되어 있는 실의와 좌절의 분위기를 쇄신하는 게 국가중흥을 위한 선결과제라 판단하고, 그 일환으로 명랑가요 보급에 팔을 걷어 붙였다. 물론 기존의 트로트풍의 노래들에 대해선 왜색조, 비탄 조라는 이유를 달아 탄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국민 꾀꼬리 박재란의 <산 넘어 남촌에는>은 그런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1965년에 발표되어 한반도의 절반을 온통 초록빛으로 물들였다. 박재란은 곡의 분위기에 따라 창법을 달리했던 몇 안되는 실력파 가수로 1957년 KBS 전속가수로 선발되어 한명숙, 현미와 함께 60년대 여가수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다.



<산 넘어 남촌에는>

산 넘어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아 꽃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은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가진들 들려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때 나는 좋데나



산 넘어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빛깔이 그리 고울까

아 금잔디 넓은 벌엔 호랑나비 떼

버들 밭 실개천엔 종달새 노래

어느 것 한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때 나는 좋데나



위의 노래는 ‘국경의 밤’으로 익히 알려진 파인 김동환 시인의 시에 김동현이 곡조를 붙여 완성했다. 본디 시는 3연으로 되어 있으나 2연까지만 노래로 채택되고 마지막 연이 제외된 이유는 명랑기조를 유지하려는 의도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나는 지금도 박재란의 <산 넘어 남촌에는>을 들을 때면 그 때 내 눈 앞에 파노라마로 펼쳐진 보랏빛 봉우리들의 장관이 눈에 선해 마음이 아려온다.

전 한국교통방송·CBS 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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