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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우체통

안준헌 2013년 05월 06일 월요일
   
 

인터넷과 e-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실시간 소통이 이뤄지는 디지털 시대에 있어 편지나 엽서는 구시대적 문화라 하겠다. 그러나 한 시절 연신 대문 밖을 내다보며 우체부를 기다리던 향수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세대들에겐 여전히 유효한 문화다. 아무리 빠름을 강조하는 소통의 시대라 해도 그 빠름이 채워주지 못하는 감정이 있다. 그 깊은 감정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우표다. 불과 십 수년 전만 해도 거리에 넘쳐나던 빨간 우체통이다. 그 우체통이 지금 명소로 되살아 나고 있다. 인천공항고속도로 영종대교기념관에는 ‘느린 우체통’이 인기라고 한다. 지금 부친 사연은 1년 후에나 배달된다고 한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한해 5만통 이상을 부친다고 하니 업신여길 것이 아니다.

해돋이 명소 울주 간절곶에는 ‘희망 우체통’이 있다. 2006년 12월에 세워진 이 우체통은 높이 5m에 무게가 무려 7t이나 된다. 새해 소망 메시지만 한해 3만통 이상이 부쳐진다고 한다. 내용을 들여다 보니 대개가 수취인 없는 희망과 소망을 담은 내용들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이처럼 받을 사람도 없는 엽서를 보내는 것은 반성하고 후회하는 마음을 적어 새로운 희망을 찾기 위함이라 하겠다. 이를 벤치마킹해 광주광역시가 2009년 수완호수공원에 세계에서 가장 큰 우체통을 설치했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이 우체통은 높이 7m, 둘레 12m다. 새해 자신과의 약속이나 소망을 적어 부치면 12월에 배달해 주는 ‘자경엽서’와 매주 1회씩 라디오 방송에 사연을 소개하는 ‘희망엽서’ 등을 운영한다고 한다.

설악산 중청봉 대피소에도 우체통이 설치됐다. 해발 1676m에 위치했다고 하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우체통이다. 설악산 산행에서 얻은 소중한 사연을 엽서에 담아 보낼 수 있도록 했다. ‘알프스의 목가적인 풍경은 정말 일품이요. 겨울인데도 베고난 목초지는 푸르름 그대로를 간직한 채 안개에 묻혀 있오. 기온은 영상 10도. 조금전 케이블카를 타고 만년설로 뒤덮인 티틀리스산에 올랐오. 이곳은 설악산 높이 두 배에 가까운 해발 3020m라고 하오’ 1987년 12월 23일 산 정상에서 아내에게 부쳤던 엽서다. 26년이 지난 지금 장롱을 뒤져 옛날 그 엽서를 찾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이젠 설악산 대청봉에서도 멀리있는 누군가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됐으니….

안준헌 논설위원 joonhu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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