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민족의 혼’ 아리랑… 문화 콘텐츠 승화

 

한 민족, 한 국가, 한 도시의 생명력은 그들이 간직하고 있는 유·무형 문화유산의 결과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유문화를 제대로 간직하지 못하면 더 이상의 진화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게 인류의 진실이다. 특히 건축물과 같은 유형유산과 달리 뚜렷한 실체가 없거나 형태가 훼손되기 쉬운 무형유산은 민족의 정신을 담고 있기에 더욱 소중하다. 이런 면에서 아리랑은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시대가 흘러도 변함없이 전해지는 한민족의 정신과 혼이 담긴 노래, 아리랑은 세대와 계층간 통합을 이루는 힘을 지녔다. 아리랑을 통해 하나로 뭉치고 좌절을 이겨냈다. 그리고 새로운 희망을 열어가고 있다.

민족의 애환을 간직한 아리랑은 지난 해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되면서 그 가치가 재확인됐다. 이로써 아리랑은 전 세계인들의 노래라는 문화적 위상도 커지게 됐다. 반면 아리랑은 유네스코 등재를 계기로 치열한 콘텐츠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아리랑 산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각종 공연, 전시, 관광분야에서 아리랑 상품화가 폭 넓게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오늘날의 아리랑이 인류문화유산 등재에 이어 산업화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오랜 세월 전승과 보존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중심에 ‘강원도무형문화재 제1호 정선아리랑’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인구 4만명에 불과한 정선군이 지난 수십여년 축적한 아리랑의 기록과 전승 노력은 이번 유네스코 등재 과정에서 결정적인 자료로 활용됐다. 그동안 무형의 유산, 입으로 전파된 구전민요를 보이는 아리랑, 보고 즐기는 아리랑으로 새롭게 탄생시킨 ‘정선아리랑’의 성과물인 셈이다.

이에 강원도민일보는 정선군의 정선아리랑 전승실태와 보존 자료를 통해 한민족 아리랑의 문화 콘텐츠 활용방안 등을 제시하기 위한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 이번 기획특집은 모두 10회에 걸쳐 아리랑의 시원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란을 배제하고 아리랑문화가 전승되고 있는 국내·외 현장취재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토대로 새로운 ‘아리랑의 길’을 모색한다.


 

▲ 정선은 국내 대표적인 아리랑고장이다. 지역주민들이 정선아리랑 가락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고 있다.


조선후기 소리꾼 통해 알려져 영화 ‘아리랑’ 계기 전국 전파

지난해 12월 유네스코 등재

정선군 가사 3000여수 채록 올해말 8700여수 사전 발행

지난해 24개교 550회 전수도



■아리랑의 형성과 전파

학계는 아리랑의 기원에 대해 강원도 태백산맥 산간에서 불리기 시작한 서민들의 노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선지역을 중심으로 입과 입으로 전파된 아리랑은 조선후기(1865년)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중건시 그곳에 부역으로 동원된 소리꾼에 의해 서울에 알려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어 당시 경복궁 중건공사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간 부역꾼들이 그 지역의 토속적인 노동요에 아리랑 후렴구를 붙여 새로운 노래로 재생산했다는 설명이다. (아리랑의 계보 표참조)

이 과정에서 1926년 제작된 나운규의 무성영화 ‘아리랑’은 아리랑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록된다. 당시 영화가 일제강점기 민중의 고통을 대변한 수준높은 작품으로 큰 인기를 얻으면서 주제곡 ‘아리랑’도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영화 속 ‘아리랑’은 정선아라리에서 파생된 경기아리랑(본조아리랑)을 토대로 나운규가 편곡한 신민요 아리랑으로, 오늘날 가장 대중적으로 불리는 아리랑의 가락이 되었다.



■토속민요 ‘정선아리랑’

정선아리랑은 수많은 학계의 논란 속에서도 음악적·문학적으로 ‘아리랑의 원류’ 또는 ‘아리랑의 원형’이라는 점에서 큰 이견이 없다. 대표적인 아리랑 전문학자 이보형 박민일 김영운 교수 등이 수많은 학술·역사적 이론을 제시하고 있는 점도 눈여겨 볼 만하다. 하지만 여전히 아리랑의 시원설에 대한 논란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선군은 자칫 대동단결을 상징하는 아리랑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는 소모적인 논쟁에 대해 우려를 보이며 ‘통큰 아리랑’을 주창하고 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계기로 정선, 밀양, 진도 등 3대 아리랑 고장뿐만 아니라 문경 등은 아리랑 선점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지자체가 아직까지 아리랑 콘텐츠발굴을 위한 시책은 걸음마 수준이다. 주로 정선을 벤치마킹하는 수준이다. 일부 지자체는 대규모 건설사업에 치중한 급조된 계획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정선군은 지난 1971년 제1호 강원도무형문화재 등록에 이어 정선아리랑제, 정선아리랑 보존회, 정선아리랑 문화재단, 군립아리랑예술단으로 이어지는 전승 및 보전체계에 민간단체인 정선아리랑연구소가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그동안 수집 채록된 가사수도 3000여수에 달한다. 이르면 올 연말 8700여수에 달하는 정선아리랑 가사 사전이 발행될 예정이다. 이 같은 가사 수는 세계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규모다. 이는 아리랑 콘텐츠를 발굴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기술을 지녔다고 표현할 수 있다. 산골짝 정선에 불린 토속민요인 아리랑이 얼마나 방대하게 생활화됐는지 직·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우영 정선아리랑문화재단 연구개발팀장은 “아리랑은 세대간, 계층간 갈등을 치유하는 신비로운 힘을 지니고 있다”며 “아리랑이 일상화되고 있는 정선은 여느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아리랑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도시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아리랑계통 악곡의 파생관계 정리표
<자료> 김영운(한양대 국악과 교수, 2013)

■정선에게 아리랑이란

공무원 남계원(40)씨는 얼마 전 네살배기 딸이 흥얼대는 노랫가락에 흐뭇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유치원에 다니는 딸의 입가에 맴돌고 있는 노래는 다름 아닌 ‘아리량~앙~’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남씨는 중고교 시절 음악수업 시간에 배웠던 옛 추억을 떠올렸다. 싫든 좋든 청소년기 마음 속 깊이 자리잡은 아리랑은 성년이 됐어도 어린 딸을 통해 다시 전해졌다. 적어도 정선에서는 세대를 넘어 일상생활 속에 파고든 문화가 바로 아리랑인 셈이다.

정선지역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대부분 아리랑 배우기 프로그램이 일상화돼 있다. 어려서부터 아리랑을 동요처럼 익숙하게 접하고 있는 것이다.

초·중·고교 역시 방과후 수업 또는 동아리 활동을 통해 아리랑 가락을 익힌다. 이중에서 재능있는 학생은 집중적인 전수교육을 받는다.

정선아리랑문화재단은 2012년 한해동안 지역 내 24개교 650여명의 재학생을 대상으로 모두 550회의 전수교육을 실시했다.

여기다 경로당 20곳을 방문, 총 182회에 걸쳐 어르신 360여명을 상대로 예부터 흘러내려온 아리랑 가사 채록과 전승교육을 병행했다.

정선군청 공무원 역시 1박 2일간 아리랑연수를 통해 애향심을 키운다. 일선 교사들도 방학 중 아리랑 배우기에 열정적으로 참여한다. 교육인원을 선착순 제한해야 할 정도다. 이뿐 아니다. 정선에서 느껴지는 아리랑 문화는 길거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는 정선5일장 일대를 둘러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아리아리 떡사랑’ ‘아리랑칼국수’ ‘아리밥상’ ‘아랑 맛집’ ‘북실골 아리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5일 장터 일부 구간은 ‘아리랑 골목’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정선의 향토음식을 주메뉴로 하는 식당은 정선아리랑 가사에 나오는 ‘동박골식당’ ‘싸리골식당’이 연이어 눈에 띈다.

이처럼 지금 정선은 아리랑문화로 사로잡혀 있다. 정선이라는 공간에서 아리랑은 특정인의 노래에 국한되거나 단순히 보전대상의 문화재로 그치지 않는다. 특정인이나 특정단체의 전유물은 더욱 아니다. 생활, 그 자체 속에 100여년 이상 전해지고 축적된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아리랑이라는 고유문화가 한 도시에 미치는 파급효과와 시대정신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진용선 정선아리랑연구소장은 “정선아리랑은 화사함보다는 투박하면서도 자연스럽고, 은근하면서도 솔깃한 호소력을 지녔다”며 “과거의 노랫말로 그치지 않고 현재 생활 속에서 창작되고 기록되는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설명했다. 정선/박창현·최경식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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