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간 24번 승자 바뀐 395 고지
중공군 1만4389명 국군 3146명 희생
군 백병전 불사 남동 요충지 사수

▲ 백마고지위령비

“철원평야를 사수하라.”

6·25전쟁 중 가장 치열한 진지전인 백마고지전투는 국군 제9사단과 중공군 제38군이 철원 서북방 395고지를 빼앗기 위해 벌인 전투다.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10일 동안 이어진 이 전투는 고지 주인이 24번이나 바뀌었을 정도로 치열했다. 이 과정에서 중공군 1만4389명, 국군 3146명이 희생됐다.

1952년 10월 6일. 장융후이가 지휘하는 중공군 제38군은 철원 서북방 395고지를 기습 공격했다.

철원 북방에 있는 395고지는 남동쪽으로 펼쳐진 철원평야 일대를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로, 이 고지만 차지하면 철원 일대를 전부 위협할 수 있는 지리적 요충지였다.

특히 395고지는 서울로 통하는 국군의 주요 보급로로 매우 중요했다.

당시 395고지는 김종오 소장이 지휘하는 제9사단 예하의 제28·29·30연대 병력 2만명이 사수하고 있었다. 그러나 4만4056명의 병력을 앞세운 중공군의 인해전술 또한 만만치 않았다. 국군은 백병전을 불사하며 고지 사수에 나섰지만 기습공격 하루만인 7일, 중공군에 395고지를 함락 당했다.

그러나 국군은 곧바로 전열을 재정비, 반격을 준비했다. 이 때부터 뺏고 뺏기는 치열한 전투가 시작됐다. 하루 2번 이상 고지 주인이 바뀌는 것은 예삿일이었고 많게는 하루 5번 이상 고지주인이 바뀌기도 했다. 기나긴 전투는 10월 15일, 제28보병연대가 395 고지를 완전히 장악하고 제29보병연대가 고지 북방의 전초 기지를 탈환하면서 끝이 났다.

전투 과정에서 3000여 명의 아군이 희생됐지만 이 전투로 국군 제9사단은 철의 삼각지대의 좌변 일각인 철원지역을 계속 장악하게 됐고 국군의 사기진작에도 큰 도움을 줬다.

휴전협정 후 국군 제5사단과 철원군 대마리 주민들은 조국을 위해 몸 바친 장병들의 숭고한 애국정신과 위훈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백마고지전투에 대한 승리의 교훈을 전하기 위해 기념관과 전투전적비, 위령비를 건립했다. 정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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