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고개마다 삶의 애환 담겼다
일제 강점기 시련·고뇌·희망 등 각 시대의 정신·민족 애환 서려
아리랑 함축적 가사 표현 대표 소재

길이 산을 만나면 고개라고 했던가. 우리 민족은 결코 순탄한 길을 걷지 못했다. 수많은 고개를 넘어야 했다. 그 길을 걷고 또 걸어 고개를 넘었다. 그래서 그 길에는 시대의 정신과 민족의 애환이 담겼다. 고단한 삶도 고갯길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담은 민족의 노래가 아리랑 아닐까. ‘아리랑 고개’가 담고 있는 상징성을 이해한다면 아라리의 더욱 큰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게’라고 애원하는 정선아라리의 고갯길을 찾아가 본다.



‘아리랑 고개’의 의미

정선아라리의 가사적 특징은 소박성, 해학성, 정의성, 유타성, 시류성 등으로 분류한다. 이들 가사의 다양성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소재라면 ‘고개’라는 단어를 빼놓을 수 없다.

‘아라리 고개’가 상징하는 의미는 ‘아리랑’의 역사성과 내면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상징어이다. ‘고개’를 통해 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하고 시련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별의 장소로도 고갯길은 인식됐다.


아리랑 고개다 정거장 짓고

오시는님이야 가시는님이야 쉬서나 가시오


 

▲ 평창과 정선의 관문인 성마령길. 워낙 산세가 험해 정선아리랑 가사에 전해지고 있다. 정선/박창현

‘아리랑 고개’를 ‘열두고개’로 표현하는 노랫말도 자주 볼 수 있다. 한 개인에게 ‘열두고개’를 넘는 과정은 태어나서 죽는 과정으로 보고 있다. 인생을 살면서 ‘넘어야 할 고개’를 의미하면서 ‘땀의 고개’ 너머로 희망적인 세계가 펼쳐져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동시에 함축되고 있다.


아리랑 고개는 열두나 고갠데

넘어 갈 적 넘어 올 적 눈물이 나네


아리랑 고개는 열두고개가 아니냐

우리들을 넘을 고개는 땀고개가 아니냐


시대적으로는 ‘일제 강점기’와 같은 시대적 고개로 나타나기도 한다. 아리랑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전 민족의 가슴 속에 자리잡게 된 중요한 계기 중의 하나가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1926년)이었는데 여기서 ‘아리랑고개’는 주인공들이 일본 순사를 낫으로 찔러 죽이려다 붙잡혀 갈 때 넘는 고개로 설정됐다. 주인공이 일제 관헌에게 끌려 고개를 넘어가는 장면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로 나오면서 관객들은 한 목소리로 ‘아리랑’을 부르게 된다. ‘민족 시련의 고개’를 상징한 것이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정우택 성균관대 교수는 “아리랑고개는 개인에게 있어서 ‘삶의 고개’ ‘생활의 고개’이면서 고개 너머의 희망을 위해 넘어야 할 자연물로 인식하고 있다”며 “개인과 집단의 생활로부터 민족공동체의 운명과 역사적 시련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넓고 다양한 의미와 형상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 1930년대 일제강점기 일본 현지에 배포된 아리랑엽서 배경. 소장자료=정선아리랑연구소
정선아리랑 속 고갯길

고려시대 정선의 옛 이름은 도원(桃源)이었다. 당시 관찰사와 군수, 과객 등의 작품 속에서 정선은 ‘무릉도원’으로 묘사되고 있다. 즉 정선을 다스리는 사람들과 유람객들에게 정선은 무릉도원이었다.

지도층과 달리 백성에게 정선은 무릉도원이 아니었다. 험한 지형과 자연을 이겨내며 살아가야 하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민초들은 첩첩산중 자연 속에서 절망을 느끼면서도 점차 자연에 대한 애착을 노래한다.


정선의 이름은 무릉도원이 아니냐

무릉도원은 어디를 가고서 산만 충충하네

 
일 강릉 이 춘천 삼 원주라 하여도

놀기좋고 살기좋은 곳은 동면 화암이로다

(동면 화암은 현재 정선군 화암면)


흔히 정선을 가리켜 ‘울고 들어가서 울고 나오는 고장’이라는 말이 있다. 이조 중엽 당시 오횡묵 정선군수 부인은 가마를 타고 평창과 정선의 관문인 해발 867m의 성마령 고개를 넘는 과정에서 참기 어려운 고생을 노래로 읊었다.


아질아질 꽃베루 지루하다 성마령

지옥같은 이 정선을 누굴 따라 내 왔나


현기증 날 정도로 높고 지루한 고갯길인 꽃베루재와 성마령 고개를 넘어야 하는 ‘지옥 같은 이 정선’은 ‘정선같이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뀌어 표현되기도 한다. 험준한 자연 속에서 흩어져 살고 있는 주민들끼리 서로 의지하면서 정이 깊어져가는 ‘무릉도원 정선의 삶’을 잘 나타내고 있다.


정선같이 살기 좋은 곳 놀러한번 오세요

검은 산 물 밑이라도 해당화가 핍니다


정선은 지형적으로 보면 한반도의 등뼈인 백두대간에서 우뚝 솟은 산악지대다. 조선 중기 인문지리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무릇 나흘 동안 길을 걸었는데도 하늘과 해를 볼 수 없었다”고 정선 땅의 가파른 산세를 강조했다. 가도 가도 눈앞에는 총총한 산봉우리와 산자락 속에서 살아 온 정선사람들은 ‘아라리’라는 노래를 통해 설움을 풀어냈다. 그리고 고개 너머에 있는 희망을 노래한다. 그래서 ‘아라리’는 ‘아리고 쓰리다’ ‘누가 내 뜻을 알리요’라는 풀이 속에 긴 여운을 남기는 명칭이다.


우리댁의 서방님은 잘났던지 못났던지



강릉 삼척에 소금사러 가셨는데

백봉령 구비구비 부디 잘 다녀오세요

 
비행기재 말랑이 자물쇠 형국인지

한번만 넘어오시면 넘어갈 줄 몰라요

(비행기재 말랑:평창과 정선 사이의 고개 꼭대기)


‘아라리’로 불리는 정선아리랑은 창자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누구라도 노래하면 창자가 되고 나머지는 청자가 되었다. 놀이형식으로 서로 주고받으며 울분을 토하고 서로를 위로하면서 자기를 정화했다. 또 건강한 일상으로 환원하고자 하는 카타르시스의 기능을 수행했다. 비록 가도 가도 끝없는 고갯길을 넘으면서도 아리랑 한 소절 속에 희망을 노래한 ‘고개의 노래’가 정선아리랑이다. 정선/박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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