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토 무관심 속 사라지는 조선족 버팀목

조선족 아리랑을 흔히 ‘디아스포라(Diaspora) 아리랑’이라고 표현한다. ‘디아스포라’는 이산(離散)을 가리키는 그리스어로, 본 거주지를 떠나 세계 각지에서 그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살아가는 유대인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조선족 역시 디아스포라의 한(恨)과 민족의 상흔을 간직하고 있다. 길게는 400여년전 노예와 포로가 되어, 짧게는 100여년전 일제강점기 식민생활을 겪은 조선족은 디아스포라의 이주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조선을 떠나며 아이들과 보따리뿐 만 아니라 어려서 귀담아 듣고 따라 부르던 민요, 아리랑을 품고 이주했다. 이 때문에 중국 내 소수민족으로서의 단결력도 아리랑을 통해 결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아리랑 공동체’가 이주 4세대로 접어들면서 급격한 인구감소와 젊은 층의 역외이주로 위기를 맞고 있다. 이 같은 현실적 상황에서 조선족 아리랑의 지위와 전승노력을 현지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살펴보았다.



▶ 조선족 아리랑 교육 위기

인구 감소… 연변대 한족 위주 수업

中 자치주 해제·조선족 해체 우려



▶ 조선족 아리랑 계승 승부수

중국에 국가급 문화유산 등재 신청

韓 인류무형유산 추진… 뒷북 비판



■ 흔들리는 조선족 아리랑교육

중국 지린성 연변대 예술학원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조선족 전문예술인을 배출한 메카였다. 한때 입학경쟁률도 최고 30대1에 달했다. 무엇보다 한민족의 민요와 무용 등의 전문교육뿐만 아니라 아리랑 전승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하지만 수년전부터 조선족 입학생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한족 학생으로 정원을 채워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우리나라의 예술고교에 해당하는 연변대학 예술학원 내 중등전문학교도 절반이상이 조선족 대신 한족이 강의실을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수업형태도 주로 조선족 위주의 강의에서 중국 토종인 한족의 언어와 문화를 배려한 수업 전개가 불가피해졌다.

연변대 예술대학 신광호 교수는 “올해 예술대학 신입생 12명 중 조선족은 단 1명에 불과하다”며 “점차 조선족 학생들이 줄고 있어 걱정이다”고 토로했다.

이어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가도 마땅히 취직할 자리가 없어 예술대 진학을 기피하는 조선족 학생들이 늘고 있다”며 “한국 사회처럼 교육열과 교육비는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대다수의 학생들은 유학 온 한족들이 점령하고 있는 분위기여서 아쉽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은 출산감소와 국외진출에서 비롯되고 있다. 조선족은 노무와 혼인, 유학 등으로 한국에 44만여명, 일본에 5만~6만명 등 모두 65만명이 해외 진출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로 인해 1952년 연변자치주 전체인구의 62%에 달했던 조선족인구는 2010년 기준 전체인구 218만명의 36.7%에 불과한 82만여명으로 추락했다. 중국 내 소수민족 비율이 30%를 밑돌면 자치주 지정이 해제될 수 있어 ‘조선족 해체’라는 위기감마저 감돌고 있는 이유다.

연변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조선족 안정화(27·여·연변박물관 근무)씨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아리랑 등 한민족 고유의 전통문화예술을 공부하고 계승해나갈 자원이 점차 줄고 있는 추세임에는 틀림없다”며 “앞으로 조선족 문화를 더욱 꽃피우기 위해서는 이주 2·3세대들의 전승 노력이 절실하다”고 꼬집었다.


 

▲ 중국 지린성 연변자치구 내 연변박물관은 조선족 사회의 이주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공간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 조선족 아리랑의 전승노력

지난 2011년 5월 중국 문화부는 ‘조선족 아리랑’을 국가급비물질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중국을 구성하는 55개 소수민족의 문화를 보호하겠다는 정책 하에 조선족의 대표문화인 ‘아리랑’을 중국의 무형문화로 등록한 것이다. 이는 유네스코의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신청하기 위한 자격조건을 갖추는 수순인 것으로 뒤늦게 알려지면서 국내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받기도 했다.

즉 ‘한민족의 아리랑’을 뺏길 수 있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조선족 사회는 의아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조선족 아리랑’을 중국 국가급비물질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한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자신들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족은 디아스포라 세대가 퇴색되고 그 후손마저 급격히 줄어들자 마지막 선택으로 중국 문화재 등록을 시도한 것이다. 한국정부의 무관심 속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아리랑’을 지켜야겠다는 몸부림이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한국 정부는 한마디로 ‘뒷북’이었다. 정선군이 독자적으로 준비한 ‘정선아리랑’의 유네스코 등재추진에 이어 중국의 국가급 문화유산 등재소식이 알려지자 뒤늦게 ‘아리랑’의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조선족 사회는 한국정부가 손 놓고 있던 ‘그들만의 아리랑’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이 마치 중국 정부의 아집처럼 비쳐지자 당혹감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리상각 전 연변문학 편집장은 “아리랑은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온 조선족의 한을 위로해주는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다”며 “워낙 인구가 줄어들고 조선족문화가 퇴색되는게 안타까워 중국 정부에 아리랑의 국가유산 등재를 신청했는데 뜻밖의 상황에 처해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이어 “아리랑으로 인한 한국과 중국의 갈등이 첨예해 질수록 최대 피해자는 조선족이 될 수밖에 없다”며 “아리랑이 세계의 노래, 한국과 중국의 화합의 노래로 승화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중국 지린성/박창현·최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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