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기태 한림대춘천성심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흔히 한국 사람들이 술잔을 돌리거나 찌개를 같이 떠먹는 특유의 문화 때문에 B형 간염에 취약하다고들 알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위험은 거의 없다. B형 간염은 대부분 혈액을 통해 감염되기 때문에 주로 바이러스 보유자와의 성 접촉이나 수혈을 받는 경우 면도기나 칫솔을 같이 쓰는 경우 위험하다. 그중에서도 어머니가 출산시 아기에게 감염시키는 이른바 수직감염이 가장 많다. 출산 과정에서 산모의 혈액이나 체액에 다량 노출되기 때문에 이 시기에 감염 위험이 높은 것이다. 문제는 신생아시기에 수직감염된 경우 예후가 훨씬 나쁘다는 점이다. 성인기 감염의 약 90%는 합병증 없이 완전 회복되지만 수직감염의 경우에는 90%가 만성 간염으로 진행한다. 만성 B형 간염 환자들은 정상인에 비해 간암 발생 위험이 100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성 B형 간염의 진행 경과 중에서 비록 완치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증상이 조절되기 시작하는 신호로 ‘e항원 혈청전환’ 단계가 있다. 이는 개선된 예후와 연관이 있어 치료의 매우 중요한 지표가 된다. 간장은 침묵의 장기라 한다. 간에는 지각신경이 통하지 않아 통증이 없다. 또한 예비능력이 충분해서 간의 절반에 장애가 일어나도 나머지 부분이 대사작용을 감당하므로 정상작용을 할 수 있다. 때문에 B형 간염 환자의 약 30% 정도만 초기 감기와 같이 가벼운 증상을 경험하고 대부분은 이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무시하기 쉽다. 전에 없던 피곤감, 권태감, 식욕부진이 생겼을 때는 이미 간염이 심하게 진행된 경우가 많다.

성인 감염의 경우 대부분 급성 B형 간염을 앓고 자연 치유되지만 6개월 이내 회복되지 않으면 만성 간염으로 이행된다. 수직 감염된 경우는 90% 이상이 만성 간염으로 진행된다. 태어날 때부터 몸 안에 자리 잡은 B형 간염 바이러스는 우리 몸과 상호작용을 주고받으면서 수십 년 동안 동거를 하게 된다. 면역관용기라고 불리는 감염 초기 단계에는 바이러스 증식이 활발하여 혈액검사상 혈청 e항원이 양성이고 바이러스 수치가 높지만 활동성 간염의 증거는 없다. 그러다가 20~30대가 되면 갑자기 몸에서 B형 간염 바이러스를 적으로 인식하고 신체의 면역체계를 가동하기 시작하는데 이 과정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간세포가 파괴되고 증상이 급격히 심해진다. 일단 B형 간염 바이러스에 노출된 환자는 간기능을 잃지 않기 위해 생활 속에서 항상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선 절대 금주를 해야 한다. 간에서 술이 분해되기 때문에 간염 보균자가 과음하면 간에 부담이 되어 간염, 간경화로의 진행을 재촉한다. 또한 간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약물이나 한약도 피해야 한다. 과로를 피하고, 충분한 수면을 취해야 한다. 영양을 골고루 섭취하고 건강한 생활습관을 생활화해야 한다. 간염보균자는 주기적인 진찰 및 간기능 검사를 6개월에 1회 정도로 실시하여 간경변이나 간암으로의 진행을 막는 것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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