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운현

언론인

친일·독재 미화 논란으로 최근 한국사회를 강타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파문이 엉뚱하게도 국정교과서 제도 부활로 불거지고 있다.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꼴이랄까. 선진국 등 전 세계적으로는 교과서 자율발행제 추세가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현 정권의 국정교과서 부활은 ‘역사 되돌리기’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참고로 국내에서 국정교과서 제도는 문민정부 시절인 지난 1996년 폐지된 바 있다.

논란의 교학사 교과서 보급을 위해 교육부와 정부여당은 눈물겨운 노력을 보였다. 우선 검증과정에서부터 각종 특혜와 위법조차 마다하지 않았으며 대놓고 보급을 독려하기도 했다. 국가기관이 특정 출판사의 교과서 보급을 위해 이렇게 발 벗고 뛴 경우는 전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성과는 비참했다. 보도에 따르면, 초창기 전국 고등학교 10여 곳에서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위야 어쨌든 여론의 주목을 받았고 또 정부당국의 독려가 컸던데 비하면 매우 초라한 성과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학사 교과서 채택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단체와 학생, 학부모들이 들고 일어나 채택 취소운동을 벌였다. 대자보, 1인 시위, 언론 기고, 항의방문 등 다방면에 걸쳐 진행됐다. 그 결과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채택률은 거의 0% 수준에 그쳤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한민고조차도 여론에 밀려 지난 7일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교학사 교과서를 백지화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세간에서는 이번 교학사 교과서 파동을 두고 ‘교과서 전쟁’이라고도 부르는데 결과는 ‘피플 파워’의 완승으로 막을 내렸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서남수 교육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며 정부당국을 비난하고 나섰다. 그런데 서 장관은 사과 한 마디는커녕 “교학사 교과서 채택률이 이렇게 낮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교육부 내에 교과서 편수 조직 신설을 들고 나왔다. 정부에서 직접 교과서를 편찬하는, 이른바 ‘국정교과서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일단은 이번 사태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물타기’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 나타난 몇몇 ‘역사 되돌리기’와 일맥상통한 측면이 없지 않아 귀추가 주목된다.

국정교과서 추진 시도는 이명박 정권 때부터 간간이 터져 나왔는데 이번 교학사 교과서 사태를 계기로 노골화된 것이다. 지난번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 자격시비를 두고 논란이 될 때부터 이 문제는 가시권에 들어온 셈이다. 박정희 기념관 개관, 이승만 동상 건립, 대한민국 임시정부 폄훼 및 건국절 제정 시도 등으로 상징되는 국내 보수집단의 우경화는 친일·독재세력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번 교학사 교과서는 뉴라이트 등 보수·우익 사관의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다.

교학사 교과서가 시장에서 완패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교과서란 학자들의 논문집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학계에서 논쟁중인 사안을 버젓이 교과서에 싣는가 하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실들을 누락, 왜곡시켰기 때문이다. 교학사 교과서는 교과서로 부르기 민망할 정도였다는 것이 세간의 중평이었다. 정부여당과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교학사 교과서의 ‘완패’를 두고 좌파진영의 공격으로 인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설득력이 없다. 마치 ‘불량식품’과도 같은 엉터리 교과서를 권할 학부모나 교사는 세상에 없다.

국정교과서 제도는 한 마디로 정부가 특정 정권의 입맛대로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얘기다. 실지로 5공화국 때 나온 한국사 교과서에는 5·16쿠데타를 ‘구국의 혁명’으로, 전두환의 12·12쿠데타를 ‘정의사회 구현’으로 서술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은 엄연한 역사왜곡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학생들의 균형 잡힌 교육을 위해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들겠다.”고 밝혔는데 그 진정성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오히려 유신 정권을 찬양하는 교과서가 나오지 않을지 우려될 뿐이다. 배반의 역사가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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