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우

언론인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멀지 않았다고 한다. 2007년 2만달러를 돌파한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지난해 2만6205달러였다고 한국은행이 발표했다. 한은이 계산 기준을 변경한 착시현상이라지만 국민들의 의식은 이미 3만달러대로 진입한 듯하다.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바라본다는데도 내 호주머니는 여전히 썰렁하다.

이런 판국에 일당 5억원짜리 황제노역이라니, 국민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진다.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벌금 249억원을 내지 않고 해외로 달아났다 잡혀 들어와 교도소 노역장에 유치됐던 사건을 말한다. 대법원 판결에 따른 것이라지만 일반인의 노역 일당 5만원에 비교되면서 우리를 분노하게 했다. 찾아보니 허 회장 만큼은 아니지만 선박왕 권 혁 회장은 일당 3억원짜리,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은 1억1000만원짜리 노역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최저임금을 구태여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이건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전재산 70만원의 3모녀가 자살한 사건이 잊히지도 않았는데 이번엔 모자 자살사건이 일어났다. 사람값이 이렇게 달라도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다.

사회학자들은 어느 시대에나 상대적 박탈감이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면서 상대에 대한 개념이 바뀌고 상대적 박탈에 대한 수용 한계도 줄어들고 있는 것을 최근 일련의 사태들이 보여주고 있다. 국민들의 간덩이도 그만큼 커졌다는 거다. 예전에는 감히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집단이라고 체념했지만 이젠 넘겨다보고 키도 재 볼 수 있게 됐다는 거다. 질투의 대상이 늘어난 셈이다.

신분사회에서는 계급이 다르고 그래서 날 때부터 부와 명예를 모두 가진 사람도 있는 것이라고 인정해줬다.

선진국이라는 영국이나 일본에 왕실이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그 폭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어제까지만도 같이 대폿집에서 함께 소주잔 기울이며 육담을 나누던 동료의 경우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나와 같은 반열인 줄 알았는데, 급격히 상승한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이 사람을 열 받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를 열 받게 만드는 게 또 있다. 연봉 5억원 이상의 상장기업 임원이 640명이고 이들은 평균 9억8700만원을 받았다는 거다.

경제개혁연구소의 보고서다. 그런데 그룹 총수들은 그보다 25배나 더 받았다고 했다. 하긴 감옥에 들어 있으면서도 연봉 300억원이 넘는 총수도 있다니 부모 잘 만난 그들이야 우리와 별종이라 치고, 더러 개천에서 난 용이 있어 수백억 연봉을 받더라도 그냥 하늘의 뜻이거니 무관심한 것이 정신위생에 좋은 것으로 치부하고 살았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우리나라 고위공직자 10명 중 6명은 지난 한 해 재산이 늘어났다는 보도다.



지난 3월 말 관보에 공개된 국회 대법원 정부 등의 고위공직자 2380명의 재산변동 신고내용에서 드러난 사실이다. 중앙과 지방정부 고위공직자와 관련단체 등 공개대상 1868명 중 62%인 1152명이 재산을 늘린 것이다. 1억원 이상 증가한 공직자도 318명(17%)이나 됐다. 이들 외에도 사법부나 입법부 등 고위직 공직자들의 재산은 일반인의 통념을 뛰어넘는다. 공직자들이 이렇게 재산을 증식했는데 내 속이 왜 불편한지 모르겠다. 그들의 재산 증식 사유가 봉급을 저축해서라니, 고위공직자는 아파트 관리비도 생활비도 자식 공부도 안 시킨다는 말인가. 그 정도는 기본 재산으로 하고 있다는 말인가.

열 받게 만드는 것은 또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 나서는 단체장들의 월급이다. 많은 단체장이 예비후보로 등록하고는 선거운동에 나서고 있다. 아예 법으로 일을 할 수 없도록 업무가 중단됐다. 아직 예비후보로 등록하지 않았더라도 사실상 식물 단체장이다. 부단체장이 직무대행을 맡는다. 그런데도 월급은 꼬박꼬박 챙긴다. 배가 아프다. 이런 사람들에게 왜 월급을 줘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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