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원

번역가

어쩌다보니 최근 6년간을 미국 보스턴 근교의 작은 도시인 뉴튼에서 살게 되었었다. ‘정원의 마을’이라는 별칭답게 그 도시에는 나무들이 참 많았고, 해마다 가을이 되면 아름다운 단풍이 시선을 사로잡곤 했다. 한국의 단풍은 한자 어원 그대로 빨간 색이 주를 이루는데 비해, 미국 동부의 단풍은 연노랑, 연두, 핑크, 주황, 빨강 등 다양한 색깔을 자랑한다. 마치 온갖 색상의 파스텔을 칠해놓은 듯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뉴튼 주변에는 크고 작은 호수가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옆 마을인 콩코드에 위치한 월든 호수이다. 다른 호수에 비해 별로 크지도 않은데 호숫가를 따라 산책로도 잘 조성되어 있고, 방문객들이 소박한 점심이나 스낵을 즐길 수 있는 나무 탁자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어느 계절이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지만, 월든 호수의 숲과 그 숲을 통과하는 산책로는 가을에 특히 아름답다. 추운 겨울을 예고하는 찬바람과 아직은 따뜻한 햇살 아래 총천연색의 단풍 향연이 펼쳐진다.

월든 호수의 아름다움은 자연이 준 것이지만, 그 호수 주변을 걷는 사람들이 느끼는 아름다움은 자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헨리 쏘로우라는 19세기의 사상가가 그 아름다움의 원천이다. 쏘로우는 월든 호숫가에 작은 집을 짓고 2년이 넘는 세월동안 은둔하며 살았다. 방문객들을 위해 그의 오두막이 현장에 복원되어 있는데, 가로 2미터 세로 4미터 정도 크기인 정말 간단한 통나무집이다. 아주 작은 책상과 침대가 있고, 입구 반대쪽으로 벽난로와 함께 약간의 주방기구가 있는 구조이다. 쏘로우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지만 부와 명성을 추구하지 않고 고향에 돌아와 자연 속에서 글을 쓰는 일생을 보냈다. 통나무집에서의 은둔은 그로 하여금 인간과 자연의 존엄성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할 기회를 준 것 같다.

자연예찬론자였던 쏘로우는 월든 호수를 사랑했다. 그는 보트타기와 낚시를 즐기는 동시에 호수의 크기와 형태에 대해 자세한 기록을 남겼으며 호수의 깊이를 측정하려고 애썼다. 또한 “월든”이라는 책을 통해 문명사회에 대한 풍자를 담아내려고 했으며 모든 구속을 거부하는 자연인으로서의 독립을 추구했다. 쏘로우는 또 다른 명작인 “가을의 빛깔들”에서도 월든 호수의 아름다움을 마음으로 깊이 느끼게 하며 심지어 일기에서도 자연의 모습을 관찰하고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우주와 인간 영혼을 이야기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차가운 기운에 이슬이 맺히고 대기도 맑아진다. 그윽한 정적이 흐른다. 자연에 인격과 정신이 깃든 것 같고 자연이 내는 소리도 깊은 사색을 거쳐 나온 것만 같다. 귀뚜라미 울음소리, 흐르는 시냇물소리, 나무들 사이로 몰려오는 바람, 이 모든 것들이 우주의 끝없는 진보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자연의 소리들은 진지하면서도 듣는 이를 기운차게 만든다. 숲속의 바람소리에 심장이 격동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산만하고 천박했던 내가 숲의 바람소리를 듣고 갑자기 영혼이 되살아난 것만 같다.”

월든 호수가 주변의 많은 다른 호수들과 차별되는 특별한 아름다움을 가지는 이유는 명백하다. 쏘로우라는 사상가와 그의 글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월든 호수에 와서 쏘로우의 영혼을 통해 자연과 교감하는 것이다.

춘천에 정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작년 가을, 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춘천 의암호 주변을 돌아보았다. 넓은 호수와 호젓한 산책로, 그리고 가을의 빛을 담은 주변의 아름다운 나무들이 보스턴 근교의 월든 호수를 떠올리게 했다. 강원도 여러 곳에도 이 같이 아름다운 자연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 아름다운 곳에서 자연과 인간의 영혼을 노래한 향토의 시인과 소설가 그리고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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