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일태

전남대 교수

전대주그룹 회장의 하루 일당이 5억 원인 황제노역 사건으로 국민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이 사건은 허 전 회장이 횡령과 조세포탈 혐의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 원의 판결을 받았다. 이런 판결은 2004년부터 도입된 지역법관이라는 소위 향판 제도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향판은 벌금을 반으로 줄여주고 노역 일당은 두 배인 5억 원으로 대체하는 특혜 판결로, 향검은 벌금형의 선고 유예를 재판부에 요청했으며 벌금을 내지 않고 해외로 도피할 수 있도록 방치하였다. 역시 허 전 회장도 지역의 재벌 총수로서 각계의 선처 호소를 통해서 지역경제 공헌이라는 명목으로 법의 혜택을 톡톡히 받았다.

애초에 향판 제도는 주기적인 인사이동으로 연속적이고 효율적인 재판이 힘든 상황을 해결하고 지역 문제와 사정에 밝아 합당한 판결을 내려 신뢰성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에서 시작되었지만 지연과 학연이라는 지방의 한계에 갇혀서 특정 이해 세력과 집단을 감싸고 봐주기 판결로 변질되었다.

국민들은 죄인들이 부정하게 축적한 재물로 해외 도피생활과 대대로 부를 누리려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을 갖게 되었고 사법부에 대한 불신과 공분이 폭발하였다. 급기야 허 전 회장은 마지못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미납 벌금을 납부하겠다고 약속하고, 대법원은 항소심에서 일당 5억 원의 황제노역 판결을 내린 향판 광주지방법원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법관 인사 제도의 개선과 윤리 규정 제정하는 등의 보완책을 마련한다고 야단법석이다.

국민들은 과거 우리 사회에서 동일한 사안에 대한 법과 형의 집행을 보면서 생계형 범죄에 대해서는 징역이라는 혹독한 판결을 내리지만, 소위 재벌에게는 경제발전과 사회공헌이라는 잣대로 선고를 유예하거나 집행을 유예하며 심지어 노역을 사회봉사라는 미명으로 대신하는 관대함마저 보여준 것을 알고 있다. 이런 판결이 국민들로 하여금 법 앞 평등이 아니라 유전무죄라는 법 감정을 만들게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공정한 법과 형의 집행으로 민심과 천하를 얻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있어왔다. 황제가 최고 입법권과 사법권을 행한 청조 시대에도 최근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소위 전두환 추징법이나 특별감찰관제가 이미 있었다.

청조 옹정제는 조세포탈이나 비리를 저지른 관리나 죄인들이 축재한 부를 환수하기 위해서 직계 가족은 물론 인척과 측근들이 배상하는 것을 허용하라고 언명하였다. 이것은 죄인들이 부정하게 모은 재산을 친지와 측근들에게 분산하여 은닉하는 사례가 많아서 죄인들에게 협조한 그들도 국가에 빚진 채무를 갚을 의무가 있으므로 친지나 측근들의 재산도 몰수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비리를 저지른 죄인들이 자살하는 경우에도 가중처벌을 할 것이라고 언명한 것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보면 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언명인 것이다. 그리고 중앙에서 관리를 파견하여 형벌을 판결하는 지방 관리를 감시함으로써 특혜성 판결이나 보고를 못하도록 한 것이다. 이것은 형을 집행하는 관리가 지역 이해 집단과의 유착, 공생, 압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공정한 집행을 못하는 현실을 감찰하겠다는 옹정제의 민생을 위한 헌신적 노력인 것이다.

중국 태평성대인 강건성세(康乾盛世)를 연 청조의 강희제가 “국가의 통치는 도덕으로 백성을 감화시키고, 형벌로 백성을 교화하는 것은 특별히 신중해야 하고, 형벌은 경고의 역할을 할 때 가장 이상적”이라고 언명한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법과 형은 범죄를 방지하는 필수적인 수단이지만, 선한 사람이 법의 보호를 받고 악한 사람이 반드시 처벌을 받도록 하는 집행이야말로 백성의 평안을 위한 마지막 보루이다.

우리 사회 대다수 국민들은 입법부가 법률을 제정할 때는 민생을 원활하게 검찰이 법과 형을 적용할 때는 엄격하지만 신중하게 사법부가 판결할 때는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공정함을 보여 법 앞에 불평등하다는 법 감정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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