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탄광촌 오빠, 아리랑과 Rock을 함께 품다
1997년 락그룹 결성 3년 후 현 밴드 탄생
‘아리락’ 신장르 개척
덴마크·일본서 공연 아리랑 세계 전파 꿈

▲ 정선 출신 이길영(사진 가운데)씨가 이끄는 고구려밴드. 사진 왼쪽부터 고구려밴드 멤버 이승주(키보드), 양안복(기타), 이길영, 이종훈(드럼), 서민석(베이스).

그의 고향은 탄광촌과 아리랑 문화가 절묘하게 접목된 정선 나전이다. 10대 시절 고교진학을 포기하고 서울에서 재봉공장과 인쇄소를 전전하던 ‘소년’이었다. 가정형편상 더 이상 학업을 지속하는게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소년의 서울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상경한지 한 해 만에 다시 고향에 내려와 아버지처럼 광산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20대로 접어들면서 밥벌이로 석탄을 실어 나르는 덤프트럭을 운전했다.

평범한 대형화물차 운전기사로 ‘청년’을 맞이한 그에게 또 다른 운명이 찾아왔다. 그의 나이, 26살 되던 1997년. 우연히 헤비메탈 밴드 ‘블랙홀’ 공연을 관람한 이후 숨겨진 음악적 재능이 발산됐다. 평소 주변에서 심장 속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정선아리랑을 잘 부른다는 칭찬을 받아왔지만 전문 음악인의 길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그해 고향 선·후배를 불러모아 아마추어 밴드 ‘스톤’(stone)을 결성하면서 락(Rock) 음악세계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듬해 강릉에서 열린 락페스티벌 초청공연에서 ‘대박’을 터뜨리자 그의 결심은 더욱 굳어졌다.

지난 2000년 겨울. 어느새 30대 청년으로 성장한 그는 속초에서 5인조 락그룹 ‘고구려밴드’를 만들어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두번째 상경이었다. 더 이상 10대 소년처럼 방황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 이후로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렸다.

고구려밴드 보컬리스트 이길영(42·사진 가운데) 단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제는 14년차 관록의 락그룹의 리더로 성장했다.

이 단장은 왜소하지만 그의 가창력과 리듬은 폭발적이다. 지난 2002년부터 머리를 흔들며 고성을 내지르는 헤비메탈 대신 음악의 정신적 고향인 ‘정선아리랑’의 곡조와 현대 락음악을 접목한 일명 ‘아리락’(AriRock)으로 창조적인 음악세계를 열어가고 있다.

그는 “나의 음악은 어려서 부터 듣고 부른 정선아리랑의 영향을 받았다”며 “국악기 한두 개를 섞어 놓고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퓨전음악이 아니라 진정 아리랑이 내포한 우리의 정서와 선율이 흐르는 락음악을 꿈꾸고 있다”고 자부심을 당당히 표현했다.

뮤지션 대다수가 그렇지만 고구려밴드 역시 초창기 굶주림의 연속이었다. 무명의 세월은 지난 2005년 제1회 창작국악제에서 ‘아라리’로 금상을 차지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때 수상한 시상금 800만원은 2006년 제1집 데뷔앨범 ‘주색만찬’을 제작하게 된 종잣돈이 됐다. 2008년 2집앨범 ‘광부’도 발매됐다.

고구려밴드의 독특한 음악세계가 입소문으로 퍼지면서 이길영 단장은 객원보컬로 덴마크에서 열리는 월드뮤직페스티벌에도 참가했고 일본과 타이완 등에서도 공연요청이 들어왔다. 지난달에는 일본 도쿄에서 골수팬들이 자비를 들여 콘서트를 마련했다.

40여곡에 달하는 앨범 수록곡은 모두 이길영 단장이 직접 작사·작곡한 곡이다. 주색만찬, 아라리, 광부, 봄 없는 봄, 님이 오네 등이 한국적인 정서와 애환의 소리가 담긴 고구려밴드의 대표곡이다. 이 단장은 “아리랑의 음악성은 무궁무진한데 그 중에서 고구려밴드는 락 장르로 세계 진출을 노리고 있다”며 “서양음악에서 볼 수 없는 국악의 선율과 곡조를 현대식 기기와 노래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멤버들이 10년 이상 교체없이 동고동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고향사랑은 남다르다. 지난 2011년 가을쯤 한때 락밴드로 활동한 삼척출신인 부인 심지미씨와 함께 정선 가리왕산 기슭 회동에 둥지를 텄다. 서울까지 오고가는 길은 피곤하지만 마음만은 평화로웠다. 이 단장은 10여년간 국내·외에서 고구려밴드를 이끌며 다양한 공연을 펼쳐온 경험과 재능을 고향에 풀어놓고 싶었다.

그 결과 귀향 첫해 정선의 최대축제인 ‘정선아리랑제 개막공연’을 처음으로 길거리 난장으로 변신시키는 연출을 기획, 큰 인기를 끌었다. 또 강산에, 서울블루스 등 유명 락가수를 초청한 ‘밤풍경 음악제’도 그의 기획으로 매년 정선 여름밤에 진행되고 있다.

고구려밴드 활동도 멈추지 않는다. 오는 19, 20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국내 최대 규모의 퓨전 락축제인 제5회 여우락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 단장은 “정선아리랑은 나의 음악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만큼 신세를 지고 있다. 빠른 시일 내 정선아리랑의 가사와 곡조를 새롭게 창작한 앨범을 제작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정선/박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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