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건

강원대 교수

우리는 흔히 비도덕적인 인간 또는 불성실한 인격의 소유자들이 나쁜 사회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반대로 도덕적인 인간 또는 성실한 인격의 소유자들은 좋은 사회를 만드는가?

다음의 실험을 보자. 20∼50대의 평범한 사람들을 선발(물론 실험 참가자들은 실험에 협조하는 대가로 몇 달러 상당의 사례를 받는다)하여 한 쌍씩 묶는다. 그리고 실험감독자에 의해 연출된 제비뽑기를 하여 한 사람은 교사 역할, 한사람은 학생 역할을 하도록 정한다.

그러나 학생 역할을 할 사람은 실험을 위해 사전에 모의한 실험공모자이고, 교사역할을 할 사람이 실제 실험참가자이다. 실제 실험에서 교사에게 학생이 오답을 말할 때 전기충격을 가하도록 하고, 오답을 말할 때마다 단계적으로 올려 최대 450볼트의 전기 충격을 가할 수 있게 했다. 교사는 실험 이전에 45볼트 상당의 전기 충격을 직접 경험하여 전기충격의 고통을 알게 하였다.

실험에서는 학생이 전기 충격을 받지 않게 설계되었지만, 전기충격 버튼을 누르면 정말 아픈 것처럼 비명을 지르거나 울부짖는 연기를 하게 했다. 그리고 실험감독자는 학생이 아무리 고통을 받는 연기를 하더라도 교사에게 미리 정해놓은 대로 실험을 계속해달라는 말을 되풀이하였다.

과연 교사역할을 한 실험참가자는 몇 볼트까지 전기 충격을 가했을까? 교사역할을 한 실험참가자들은 심한 스트레스 상태에서 평균 285볼트까지 전기충격을 가했고, 그 중 65퍼센트는 최대 강도에 해당하는 450볼트 버튼을 눌렀다. 한편 실험감독자가 아무 말하지 않았을때에는 교사역할을 하는 실험참가자의 80퍼센트가 120볼트 이하의 전기충격만을 가했다.

이 실험이 바로 스텐리 밀그램의 실험, 즉 권위에 대한 복종과 관련된 실험이다.

필자 스스로에게 그리고 독자에게 물어본다. ‘나는 도덕적이고 성실한 인격의 소유자 또는 최소한 평균 이상이거나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위와 같은 비상식적 상황을 지적하거나 잘못된 권위에 불복하고 과감히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 있을까?’

분명 비도덕적인 인간은 나쁜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도덕적인 인간은 좋은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인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나는 도덕적 인간 또는 성실한 인격의 소유자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나쁜 사회를 만든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도덕적 인간이 더 나쁜 사회를 만든다. 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잘못된 권위에 더 잘 복종하는 인간의 양면성과 성실한 인격의 소유자들이 부당한 명령을 내리는 권위에 저항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하버드 대학의 대니얼 골드하겐의 ‘히틀러의 자발적인 학살자들’에서 홀로코스트는 “유대인은 죽어 마땅하다”는 반유대주의에 심취한 독일인들이 자행한 일이라고 지적하였듯이, 우리의 현실에서 자행되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주술과 우리의 준거집단의 영향력, 다시 말하면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지배자들이 퍼뜨리는 이데올로기의 주술에의 맹목적인 복종과 잘못된 힘을 행사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현실적 권세와 힘을 가진 집단을 준거집단으로 삼고자 하는 우리의 복종의식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실천과 행동하지 않는’ 도덕적이고 성실한 인격의 소유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들은 비단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자처하는 종교인들뿐만 아니라 학자, 교수, 선출직 공무원, 관료와 일반직 공무원, 언론인, 심지어 평범한 시민 등 깨어있지 않고 잘못된 권위에 복종하면서 부조리와 부패, 정의롭지 못한 것들에 대해 강 건너 불구경하듯 쳐다보고 있는 우리 모두들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허허로운 도덕적 인간들이다. 하여 적극적으로 참여(앙가주망)하고 깨어있는 도덕적 인간만이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감히 주장해 본다.

이것이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허망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좋은 사회를 만드는 길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